▲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저녁 6시, 퇴근 시간을 앞두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그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아들 육아 당번인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니, 나의 칼퇴근이 가능한 지를 묻는 것이었다. 갑자기 퇴근이 늦어진 사정인즉, 회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해당 지점이 폐쇄됐다고 한다. 남편과 같은 부서 직원이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남편이 소속된 부서도 폐쇄될 수 있어 공지발송 등 관련 업무처리로 퇴근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일단 통화는 일단락됐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코로나19의 공포가 다시 일상에 찾아왔다.

지난 3월 우리 부부는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어 모두 검사를 받았다. 환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열이었지만, 당시 검사를 받고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격리시설에 아가도 데려가야 하나?’ ‘나랑 접촉한 의뢰인들은 어쩌지?’ 등 온갖 상상을 하며 마음졸였다. 그런데 이후 줄어드는 확진자에 경계가 느슨해진 것인지, 당시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인지 잠시 코로나19를 잊고 생활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주거지 인근 확진자가 방문한 장소를 일일이 찾아봤지만,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안전 안내문자에도 무감각해졌다.

늦은 시간 남편은 아들이 잠든 이후에 집에 들어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와 아들의 옆에 얼씬도 하지 않는 나름의 자가격리(?)를 실천한 뒤 이른 아침 다시 출근했다. 사업장은 폐쇄됐지만, 관련 업무처리로 이른 출근을 하는 모습이 불안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후 자세한 상황을 들어보니 확진자의 자녀가 감염됐고 이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들이 다수 감염됐는데,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로부터 남편 회사 직원까지 감염된 것이었다. 감염된 직원은 감염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했다. 함께 근무하는 지점의 직원, 해당 지점에 출장을 온 타지점 직원, 함께 주말 운동모임을 하는 회사 동료들과 밀접 접촉이 이어졌다. 그 밀접 접촉자가 일하는 지점에서 재차 수많은 접촉이 이뤄지면서 타지점 폐쇄와 자가격리가 진행됐다. 그 수많은 접촉자의 N차 접촉자들. 확진자 자녀의 어린이집 친구로부터 1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후 역학조사 대상자와 범위는 엄청났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 회사에 다니는 남편, 많은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인 나, 코로나19가 우리 가족 주변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 모두 생계를 위해 업무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만난다. 우리의 노동 현실을 돌아보면, 재택근무나 비대면 근무가 불가능한 경우가 일반적이고 100% 비대면 근무가 가능한 업종은 매우 제한적이다. 대다수 노동자는 사람을 마주하며 일하고 노동현장에서 코로나19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다수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상황 자체가 밀접 접촉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같은 건물에 확진자가 발생하거나 다녀가기라도 하면 일단 사업장을 폐쇄해야 한다. 누군가의 일시 휴업이 누군가에겐 실업이자 폐업이 될 수도 있다. 무더위 속에 마스크를 착용하며 근무해야 하는 건설·택배노동자들부터 고객을 일일이 대면하며 근무하는 마트노동자들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장에서 쓰러져 가며 일하는 방역 인력과 의료진 노고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도래하는 언택트 시대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나, 현장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공포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비대면 IT기술이 보편화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의 노동현장은 관계와 컨택트의 연속이다. 컨택트의 포기는 언택트한 일상이 아닌 생계의 위협이다.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언택트 시대는 달갑지 않다. 따로 또 같이 묵묵히 방역수칙을 지키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며 이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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