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의 평등버스가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이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같은 특정한 차별금지 사유 혹은 영역에 따른 개별법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개별법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차별이 많다. 그래서 모든 사유와 영역을 포괄하는 법을 제정해 인권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로 차별금지법에서 성소수자 의제가 주로 부각되지만,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한 법이다. 일터에서 많은 차별을 겪는 노동자들에게도 차별금지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터는 차별이 상존하는 공간이다.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제도적인 차별이 실재한다.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종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그 안에 남성을 한 두명 포함했다는 이유로 차별이 아니라고 하듯, 외견상 차별이 아닌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특정집단에 불리한 간접차별도 많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일터환경도 차별이다. 여성이고 이주노동자이고 준고령자라면 그 노동자는 그 복합적인 차별의 결과로 최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다.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탁계약서를 쓴다는 이유로 ‘단결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권리’를 빼앗기는 노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차별은 ‘합리성’의 외양을 띠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능력의 차이’로 설명되고,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일·가정 양립’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청년과 고령자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일자리 정책’이라고 합리화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왜곡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으로 정당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존엄이 훼손당하는 경험을 하면서도 이것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따라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도 일터에서의 차별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 때문에 발생한 고통이 피해자의 책임으로 전가되지 않고 그 차별을 만들어 내는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일터에서의 차별은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반말과 무시,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조직문화는 단지 성격 나쁜 직장상사 때문이 아니다. 일터 괴롭힘을 노동자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일터에서 많이 죽는 것도 개인이 안전지침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위험을 외주화하거나 안전지침을 지킬 수 없도록 만든 구조적 차별 때문이다. 성별과 출신 지역, 성적 지향, 학력 등으로 보이지 않게 승진에서 누락시키거나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일터에서의 차별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고용형태를 이유로 권리를 일방적으로 훼손하는 제도적 차별의 결과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하는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진 행동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점을 배웠다. 자신의 존엄을 훼손당하면서도 이 고통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이 ‘일터 괴롭힘’이 법제화되면서 이 언어로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됐다. 이처럼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대해 누군가가 “능력에 따른 대가의 정당한 차이”라고 주장할 때, 그 능력이 무엇을 말하는지, 능력을 누가 규정하는지, 그 격차는 도대체 얼마나 적정한 것인지를 질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의 차별을 없애고 단결하기 위해 싸워 왔다. 노조의 역사는 노동자를 위계화하는 기업에 맞서 평등을 구현해 가는 운동이었다. 그런데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동안 노동자의 과제로 인식되지 못했다. 일터에서 지속되는 차별을 제대로 인식하고, 차별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에게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일터에서의 차별로 이어지고 이것이 노동자의 단결을 위협하는 것처럼, 이 사회가 누군가를 차별하면 그 차별은 다시 일터에서의 분할과 위계로 자리 잡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일터에서의 차별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힘이기도 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노동자들이 더 힘 있게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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