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진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 집행위원장

지겹다.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를 사려고 버둥대다가 아파트에서 죽는 한국 사회다. 임금인상률보다 높은 아파트값 인상에 누군들 부동산투자에 관심을 두지 않을까. 범인들에게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방법이 ‘갭투자’라면, 말이라도 바로 하게끔 이름이라도 ‘갑투자’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 갑이 되기 위한 투자가 분명하니까.

문재인 정부 임기가 3년을 지났다. 뉴스를 보고 놀랐다. 재임 40개월간 20개가 넘는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고 한다. 중·고등학생 때 두 달에 한 번씩 중간·기말고사를 봤던 기억이 겹쳤다. 국민이, 부동산시장이 매번 시험문제를 내는 모양이다. 근데 방학도 없이 시험을 치는 이 정부의 부동산과목 점수는 어떤가. 임대차계약갱신에 전월세 인상률을 제한하고, 용적률 제한 완화에 50층짜리 재건축에 그린벨트 해제논란, 거기에 부동산값 잡는다는 이유도 한몫한 행정수도 이전까지. 거기에 기름을 붓듯이 온갖 국회의원들과 고위관료, 게다가 청와대 참모들까지 가진 아파트가 몇 채이며, 1주택만 남기고 파네 마네, 관직을 내려놓네 마네 하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요즘 코미디프로도 이것만 못하단 생각도 들었다.

근데 나는 진정한 아파트대책은 이것이 전부일 수 없다 생각한다. 아파트를 거주공간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거꾸로 아파트를 일터로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가 아파트에서 나와 출근할 때 거꾸로 아파트로 출근하는 사람들, 바로 아파트경비원들 얘기다. 소위 ‘경비아저씨’를 다들 누가 말 그대로 경비로 생각할까. 막말로는 하인, 고급지게 표현하면 집사, 아무 생각 없이는 경비원, 실제로 따져 보면 관리원, 그쯤 아닌가. 예로, 아파트 자기 집에 도둑이 들면 경비원을 부르기보다 112에 신고하는 집이 백이면 백일 것이다.

5월10일, 강북의 한 아파트에서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아파트경비원이 투신했다. 장소는 공교롭게도 본인이 거주한 아파트였다. 그 가해자는 현재 국선변호인마저도 변호를 포기해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됐다. 다행스럽게도 지역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아파트경비원 보호대책을 내놓고 경비원이 진짜 해야 할 일이 뭔지, 어떤 처우를 받아야 하는지를 내가 속한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대한주택관리사협회·전국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국토교통부가 함께 경비원 보호 상생협약을 맺고 기초논의를 시작했다. 법률도 손보고, 모델도 새로 짜 보고, 경비원들도 만나 보고, 정부도 접촉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아파트경비원에 대한 갑질문제는 현상일 뿐이다. 바로 1·3·6개월짜리 초단기근로계약을 강요하는 불안정노동이 평균연령 68세 아파트경비원들의 인생황혼기 여생노동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까지만 경비원은 경비업무만 시키라는 경찰청의 탁상공론과 같은 행정계도 예고에 겁을 집어먹은 몇몇 입주자들은 서둘러 경비원을 해고하고 CCTV를 설치하는 추세다. 정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그런 와중에 부동산정책이 온갖 신문을 도배했다. 생각해 보니 간단했다. 나도 아파트입주자인데 매년 아파트관리비가 부담된다. 그 부담 중 하나는 분명 경비아저씨 월급인상이다. 맞벌이를 해서 겨우겨우 월세를 집주인에게 내든, 은행에 이자를 내든 최소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을 내는 와중에 경비아저씨 월급인상이 과연 곱게 보일까. 인심도 곶간에서 나지, 마른 땅에서 나지 않는다.

1주택으로 하자. 2주택 이상 중과세를 무겁게 하자. 그래서 집 하나로 만족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분양원가도 공개하고 분양가상한제도 하자.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하자. 노후 안정을 위해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불안의 떨림을 멈출 수 있는 그 무엇이든 해보자. 그래야 아파트에 사는 절반 이상의 세입자 국민이 그나마 팍팍한 살림살이에 월세·대출이자 부담이라도 줄어야 내 집에 앉아 이웃을, 주위를 돌아볼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아파트경비원들의 처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격일제 24시간 근무에 10시간씩 휴게시간을 주는 말도 안 되는 근무체계는 이제 그만두자. 다만, 대량해고를 불러올 수 있는 급격한 관리비 인상, 경비아저씨들의 급격한 임금인상은 과도기 차원으로 정리하자. 대신 해고만은 막자. 고용만은 유지해 달라. 입주자들에게 절박하게 간청한다.

경비아저씨들은 우리의 이웃이니까, 이 사회의 어른들이시기에 따뜻한 마음으로 일자리를 지켜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경비원도 온전한 노동자로서 인정받아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한 번은 받아 볼 수 있는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나.

마지막으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요청한다. 아파트공급대책도, 아파트경비원대책도 다 국토부 소관이다. 두 대책 사이에 장강이 흐르지 않는다. 아파트 값을 조금이라도 잡아 주십사, 내 집 걱정 없이 사는 삶을 더 고민해 주십사 부탁한다. 그래야 경비아저씨들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일하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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