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사모펀드 환매중단은 명백한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예요. (수익에 매몰돼) 부자금융·약탈금융·경쟁금융에 기반했던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을 서민금융·돌봄금융·협동금융으로 전환해 금융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산별노조인 사무금융노조가 할 일입니다.”

이재진(51·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이 금융정책 전환을 촉구하며 강조한 말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말 사무금융노조·연맹 위원장으로 선출돼 올해 1월 초 임기를 시작했다. 그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원인 분석과 대책 수립에 몰두하면서 동시에 연맹 체계를 산별노조 체계로 전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산하 조직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대의원대회를 온라인으로 하고,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대화방으로 대체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위원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100여개 노조 산하 지부와 54개 연맹 산하 노조를 다 만났다. 그는 “각 지부·노조를 만나 의견을 듣고 논의 결과를 본조 사업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별노조 전환 완성과 금융공공성 확보, 금융권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등 굵직한 목표를 세우고 걸음을 옮기는 이 위원장을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노조사무실에서 만났다.

코로나19로 상반기 워크숍까지 취소

- 위원장 당선 뒤 바쁜 상반기를 보냈다. 소회가 있다면.

“사실상 당선하자마자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커졌다. 노조는 모여서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조직인데, 코로나19로 모일 수 없다 보니 한계가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유로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취임 이후 현재까지 부지런히 산하 노조와 지부를 찾고 있다. 최소한 한 번씩은 다 만났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만남이 어려운 현실적 부분을 노조가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고 방향을 설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미 대의원대회나 중앙집행위원회에 온라인을 활용했지만 비대면 의사소통의 한계가 분명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크다.”

- 코로나19는 사무금융 노동자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현장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국내 첫 사업장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10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특별교섭 요구안을 만들었고, 대책본부를 꾸려 사업장 현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다. 사업장별 특이사항을 공유하고,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를 보호했는지 살폈다. 이런 노력이 사업장별 코로나19 가이드라인 발표로 이어졌다.

일부 사업장은 코로나19를 핑계로 임금·단체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도 했다. 최근 만들어진 신생노조가 그런 상황을 겪고 있어 현실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 노조는 노사교섭 외 노정교섭에도 상당한 공력을 쏟고 있다.

“그렇다. 사무금융노조는 2금융권을 중심으로 조직한 노조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사용자에 대한) 감독기능을 통괄하고 있어 노정교섭을 통해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 당장 보험업종에서는 노동자들이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제 문제를 크게 느끼고 있다. 블랙컨슈머의 불합리한 문제제기가 인사평가에 반영돼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부분을 금융감독원이 잘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아쉬운 점이 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정교섭이 필요하다.

방향은 다양하다. 정부에만 국한하고 있지 않다. 최근 국회에서 사모펀드 감독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모펀드 문제는 2015년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하면서 발생했고, 지난해 터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 금융기관 법인은 대부분 법의 처벌망을 비켜나 있었다. 금융위·금감원은 판매노동자를 중심으로 징계를 했다. 이런 것은 금융당국과의 대화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징벌적 과징금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법을 바꿔야 한다. 노정교섭을 정부에 국한하지 않고 국회 정무위원회 등과도 논의를 해야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

-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완성하는 게 그런 논의에 도움을 주나.

“물론이다. 노정교섭은 금융정책에 관련한 부분이다. 노조 지부나 연맹 소속 노조마다 공통된 부분이 있다. 기존의 연맹-노조 구도 아래서는 기업별 노조의 관성이 강하게 남아 산별교섭에 어려움이 있다. 산별교섭을 하면 구체적인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기업별 특생이 있고 여건도 달라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금융정책과 관련한 부분은 공통의제가 나올 수 있다. 아직은 산별교섭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년부터는 조금씩 시도해 보려고 한다. 우선 연맹 산하 5개 업종본부가 각각 업종별 산별교섭을 하면서 동시에 업종본부 간 신뢰를 구축하고 연대투쟁을 하는 게 필요하다. 이렇게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게 당면한 과제다. 산별노조 전환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연맹의 업종본부와 산별의 업종본부가 공동 사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연맹 업종본부의 교부금을 대폭 인상했다. 유대 구축과 신뢰 확보를 기대한다.”

- 현재 진척상황은 어떤가.

“아쉬움이 있다. 위원장선거에 당선하면서 지난 3월께 연맹과 노조의 모든 상근간부가 함께 섞일 수 있는 1박2일 워크숍을 준비했다. 참가인원이 400명 가까이 됐다. 소통을 위한 자리였는데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돼 취소했다. 산별노조 전환을 진행하며 생긴 틈을 메우려고 했던 시도라 아쉬움이 크다. 하반기엔 대표자만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구상해 보고 있다. 상반기를 평가하고, 하반기 사업 진행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별노조를 어떻게 완성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이미 지난 선거 공약으로 임기 말께 사무금융연맹을 발전적으로 해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나의 깃발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간담회를 열고 공동사업과 공동투쟁을 해 나갈 계획이다. 어쩌면 노조로서는 가장 큰 현안이다. 일부 지부는 연맹에 속해 있다가 본조와 함께 투쟁하면서 산별노조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지속할 것이다.”

“금융권 비정규 노동자 40만명 … 조직화 절실”

- 금융권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도 과제로 꼽힌다.

“맞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 중 하나가 비정규 노동자 문제였다. 함께 투쟁해 나가야 할 필요가 크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보험설계사는 지난해 9월 노조 설립신고를 했지만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을 만나 문제제기도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정부당국은 전속성을 이유로 노동자성을 부정하는데, 사업 재편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계획한 것이다. 최근 택배연대노조에 이어 대리운전노조도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대리운전노조도 2년 만에 설립신고증을 받은 만큼 당국을 압박하는 투쟁을 계속할 계획이다. 콜센터 노동자는 대부분 도급형태다. 현재 개별 조합원이 산별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이들을 묶어 콜센터지부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는 공약이다. 직접 한 약속인 만큼 이행이 매우 중요하다. 금융권 노동자 약 80만명 가운데 40만명이 비정규 노동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금융우분투재단과 함께 사무금융우분투비정규직센터를 출범했다. 현재 활동가를 채용해 사업을 하고 있다. 대상을 콜센터 노동자와 보험설계사에 국한하지 않고 국내 모든 비정규 노동자와 미조직 사업장 고충상담이나 법률상담을 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노동자 조직화만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보호할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노동자들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할 계획이다.”

- 앞으로도 바쁜 행보가 예상되는데, 어떤 고민을 갖고 임할 생각인가.

“사무금융노조의 투쟁은 국민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최대 화두다. 지금 국내 노동운동은 국민에게 외면받는 처지가 됐다. 사무금융노조도 비슷한 처지다. 국민을 위한 금융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끈질긴 투쟁이 부재했다. 금융공공성이라는 말이 다소 추상적이지만 오랫동안 사무금융노조의 정책적 강령이었다. 돈은 누구의 소유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돈이기도 하다. 자금중개가 금융의 본원적 역할이다. 사무금융노조는 이 금융공공성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려 한다.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기업 내부 목표에 치우쳤던 노동운동으로 인해 조직 내부의 의사소통은 활발했으나 사회와의 소통은 단절됐다. 산별노조의 존재 이유는 사회적 교섭에 있다. 이를 통해 개별 기업의 단체협약을 사회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금융산업 비정규 노동자도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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