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처음 취직을 했을 때 친척 어른한테 들었던 첫 마디는 축하한다가 아니라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물음이었다. 그 친척 어른은 망할 걱정 없는 탄탄한 기업에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무대연출을 하는 내 친구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보다 못한 월급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가 중요한 판단 축이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한 채용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반대하는 이유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뺏길까봐 혹은 나는 어렵게 들어왔는데 비정규직은 쉽게 들어온다는 못된 심보 때문이라는 것을.

온 사회가 여기에 공정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이슈로 만들고 청년들이 분노한다고 언론에 떠들고 있다. 노조가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태인데, 청년을 이용해 정작 진짜 발화자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노조는 뒤에 숨어서 청년 일반의 목소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이 상황이 매우 개탄스럽다.

노조의 역할이 무엇인가. 소속된 노동자를 넘어 이 사회 모든 노동자가 조금 더 나은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책무는 버려두고 차별을 공고히 하는 데 애쓰고 있다. 단순히 한 주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공정과 청년만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언론, 그리고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세력에도 책임이 있다.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차별은 점점 더 공고해져 가고 있었다. 고용안정성뿐만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데도 받는 임금이 다르다. 명절에 받는 상여금은 물론이고, 사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식당조차 차별받기도 한다. 이제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고용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신분과 같은 차별이 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지적해 왔고 한국사회의 큰 문제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됐다. 그러나 이 사회 어디에서도 이를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노조는 이 이중구조를 더 튼튼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노동자와 노동자, 을과 을이 대치되는 현 사안은 무한경쟁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청년들은 일생을 공부해라, 대학가라, 취직해라, 결혼해라 같은 안정적인 길로만 가기를 요구받아 왔다. 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건 오로지 청년의 몫이었다. 삶을 전쟁터로 만든 건 기성세대인데 앞서 나와 싸우는 건 청년이다. 전쟁터에 놓인 청년들은 다른 청년을 겨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 중 이미 성안에 있는 청년도 있을 것이고 총알이 없어서 전쟁에 합류하지 못하는 청년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성곽 위에 올라가 이 싸움을 그저 관전할 뿐이다.

기성세대부터 각성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내고 방치하고 있는 이 전쟁터에 언제까지 청년들이 내몰려야 하는가. 청년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행태는 멈춰야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공정을 내세워 무한경쟁을 유발하는 것은 청년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다. 이제는 격차해소와 불합리한 구조들을 끊어내는 데 일조해야 한다. 기성세대에 사회적 연대를 위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더 이상 무한경쟁의 언어인 ‘공정’에 휘말리지 않겠다. 누가 더 갖고 못 갖고인 제로섬의 법칙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