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최근에 노조 설립 인가와 관련해 근로자 범위를 법원 판례의 경향에 맞춰서 저희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조 설립인가증이 나간 것 자체만으로 바로 사업주가 특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거는 좀 분리가 돼서 그건 법률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고 단체교섭의 사업주 위치에 있는 사업주가 거부하게 되면 저희도 거기에 가서 지도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질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답변의 한 대목이다. 양이원영 의원이, 택배노동자들의 노조가 실질적 사용자라 할 수 있는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수년간 단체교섭을 요구해 왔음에도 원청이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노동부의 적극적 지도를 요청한 것에 대한 답변을 하는 중이었다.

장관의 답변 요지는 택배연대노조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가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았을지라도, 이들의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나 원청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 상대방인지는 법적으로 또다시 따져 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답변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지점은, 노조 설립 ‘인가’, 노조 설립 ‘인가증’이라는 장관의 용어였다.

우리 헌법 33조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노동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다. 노조에 가입하거나 설립할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기에 ‘허가’나 ‘인가’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가 허용을 해야만 비로소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기본권이자 자유의 영역이다. 그러하기에 노조설립은 허가나 인가 대상이 아니며, 설립 사실을 행정관청에 ‘신고’하도록 돼 있을 뿐이다.

노동존중 의식이 미약한 언론이 노조 설립에 대해 ‘허가’나 ‘인가’ 같은 틀린 용어를 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발언은 국가의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인 노동부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이재갑 장관과 만날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고용정책에 두루 관여해 온 베테랑답게 정확한 용어와 논법을 구사하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노동부 정통 관료가 ‘노조 설립 인가증’이란 용어를 사용하다니.

단순한 말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노조와 노동관계에 관한 노동부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헌법과 상관없이, 그리고 노조 자유설립주의를 천명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관계없이, 정부에게 노조 설립·가입은 여전히 ‘허가’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방과후 강사들의 노조는 설립신고 1년이 넘도록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하고 있고, 보험설계사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대리운전노조는 조합원들이 복수의 프로그램업체로부터 일감을 받는 ‘비전속적’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설립신고가 반려됐다가 지난해 다시 신고를 하고 428일만에 신고증을 받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이미 2004년 서울여성노조 사건 이후 구직 중인 자, 실업자 등 근로기준법의 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도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점을 명확히 판결한 바 있다. 2014년 88CC 골프장 경기보조원 사건, 2018년 학습지노조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하는 노동자는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했다. 통상 사회변화에 가장 느리게 반응하는 법원보다 더 완고하게 노동 억압적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 곳이 노동부라 할 수 있다.

군인·경찰만을 예외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노조를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권리가 보장돼야 할 사람인지 결정하는 기준은 고용관계 존재 여부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국제노동기준의 핵심이다. 이런 원칙에 비춰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의 노조설립 신고제도가 실질적으로 결사의 자유에 대한 행정관청의 극단적 개입을 가능하게 하기에 이를 개정할 것을 십수년간 권고해 왔다. 그럼에도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는 노조설립 신고제도에 관한 어떠한 개선 조치도 담겨져 있지 않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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