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설계사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보험설계사노조>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전직 지점장 18명이 위촉직 지점장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결한 항소심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다. 오렌지라이프생보와 위촉계약을 맺고 지점을 운영한 이들은 회사에서 구체적인 업무지시와 실적 압박 등을 받은 노동자라며 근속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2018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이들을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17일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을 인용했다.

쟁점은 회사가 지점장들에게 어느 정도 지휘·감독을 했느냐 여부다. 지점장들은 회사가 수시로 관리교육을 하고,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실적에 따른 지점장 페널티 제도를 뒀고, 오렌지라이프생보 상품 외 판매를 금지하는 등 독점적인 지휘·감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점장의 위촉계약 내용이 보험설계사 교육·판매관리와 조직 운영 등이므로 이 같은 행위는 모두 위탁업무 실적을 판단하는 지표라고 봤다. 지휘·감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점장들은 사법부가 위촉직 지점장의 업무환경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소송을 제기한 한 전직 지점장 A씨는 “수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관리하면서 본사에서 수시로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받는 환경”이라며 “사실상의 통제가 이뤄지는 등 노동자성이 뚜렷함에도 사용자쪽 이야기만 듣고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대화 내역 등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고장을 제출할 방침이다.

이 같은 소송의 배경엔 보험업계의 독특한 지점구조가 있다. 보험업계에는 전속 보험설계사를 배치한 지점과 다양한 보험사 상품을 판매하는 법인보험대리점(GA)이 있다. GA는 독립채산제로 운영권이 독립돼 있다. 반면 지점은 지점 노동자를 본사에서 채용하고 본사의 보험상품만 판매하도록 한 폐쇄적인 구조다. 사무집기 등도 모두 본사가 제공한다.

본사는 지점장하고만 위촉계약을 맺는다. 이들을 ‘사업가형 지점장’이라고 부른다. 소송을 제기한 지점장은 모두 이런 고용형태다. 사실상의 본사조직임에도 중간관리자를 비정규 노동자로 두는 셈이다. 게다가 오렌지라이프생보 소송 지점장은 대부분 본사의 정규직으로 일하다 본사가 매각되는 과정에서 위촉계약을 종용받은 이들이다.

이런 독특한 구조 때문에 보험사 지점장 소송은 최근 빈발하고 있다. 오렌지라이프생보 외에도 미래에셋생명보험·메트라이트생명보험의 전직 지점장들이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잇단 소송에 부담을 느낀 보험회사가 사업가형 지점장을 없애고 전속 GA로 독립시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A씨는 “보험업계가 지점장의 노동자성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완전한 독립채산제 형태의 지점장 제도를 운용하려는 것”이라며 “기존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가 노동자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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