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인사발령과 직장내 괴롭힘 끝에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2일 법률사무소 일과사람에 따르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한국철도공사 화순시설사업소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아무개씨의 유족이 제기한 유족급여청구를 지난달 17일 받아들였다.

고인은 2007년 12월부터 철도공사 전남지사 벌교사업소에서 근무하다 2018년 5월 광주본부 화순시설사업소로 발령났다. 이어 지난해 10월 목포시설사업소로 인사발령 받았다.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고인에 대한 인사발령은 단체협약상 노조와 사전협의해야 했다. 하지만 공사측은 사전협의 없이 목포시설사업소로 인사조치했다. 이후 정씨가 사업소장에 항의해 발령은 취소됐다. 하지만 화순시설사업소장은 △취사 금지 △퇴근 15분 전 복귀 △3~4시간 연속 근무 △위 사항을 어기면 경위서 제출 △경위서 3회 제출시 타 사업소 전출을 내용으로 하는 복무규율지시를 내렸다. 이후 노조가 소장의 업무지시에 부당하다고 문제제기했다. 고인은 업무상 불이익을 받을 것과 일이 커진 것을 우려했다.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빠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고인은 지난해 11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인의 아내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인이 괴로움을 겪다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한국철도공사는 지난해 12월 감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사업소장의 복무규율은 고인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며 관리자로서 정당한 업무범위”라며 “고인은 철도노조의 홈페이지 확인서 게시 등으로 괴로워했다”고 반박했다.

사측 주장과 달리 질병판정위는 복무규율지시 뿐 아니라 일방적 인사발령이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인사발령이 단협을 위반한 것이고, 정식 인사발령 전에 고인에 대한 송별회를 강행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질병판정위는 “부당한 전보통지와 복무규율지시 등 화순시설사업소장의 괴롭힘과 부당한 지시를 겪는 과정에서 고인의 정신건강이 악화돼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했다”며 “업무와 고인의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심의회의에 참여한 7명의 위원도 이번 사건에 대해 모두 업무상질병을 인정했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이번 사건은 사용자의 공식감사 결과와 달리 질병판정위가 부당인사발령과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해 이로 인한 노동자 자살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한 사례”라며 “한국철도공사는 잘못된 감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진실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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