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산재보험을 운영하고 관장하는 기관은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최근 법령위반 사고를 대하는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태도에서 그 일단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노동부와 공단이 ‘법령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재해 인정기준(지침)’을 시행한 이후 피해자 과실이 있는 산업재해 사고는 범죄행위로 간주돼 불승인되고 있다.

배달노동자 A씨는 전방주시의무 소홀로 정차 중인 차량의 후미를 추돌했다. 노동자 B씨는 새벽 출근길에 편도 3차로의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사고를 당했다. 노동자 C씨는 오토바이로 출근했는데 신호를 위반하고 좌회전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쳤다. 노동자 D씨는 출장 중 오토바이를 운행해 내리막길을 가던 중 중앙선을 일부 침범해 반대편 차선에서 진행하던 차량과 부딪쳤다. 모두 공단에서 “범죄행위”로 간주돼 산재가 불승인됐다.

노동부와 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명시하지 않은 ‘중과실’ 규정을 지침에 도입했다. 법령위반 사고 지침은 입법부의 권한 침해나 다름없다. 실무상 가장 큰 문제점은 2019년 이전과 달리 ‘신호위반 교통사고’와 ‘무단횡단 사고’를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구체적인 경위에 대한 심리 미진 상태에서 불승인을 남발한다는 점이다. 또한 산재보험법 법리 이해가 부족한 공단 지사 자문변호사의 형식적인 자문을 받거나 지침을 문리적으로 해석·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공단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의 12대 수칙 위반행위를 일률적으로 중과실 범죄행위로 간주해 불승인한다. 교통사고처리법은 공소제기를 위한 규정이며, 12대 위반행위에 해당하더라도 모두 중과실치상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12대 수칙 위반행위에 해당하더라도 경과실인 경우도 존재하며, 이런 행위가 사고발생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특히 공단은 무단횡단 사고의 산재 인정에 엄격하다. 즉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불과한 행위지만(도로교통법 157조), 실무상 “12대 중과실 행위”처럼 취급한다. 가해차량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6호)해 무거운 벌금이 선고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공단은 출퇴근이나 출장 중 무단횡단 사고뿐만 아니라 회식 이후 만취상태의 무단횡단 사고를 ‘범죄행위’로 간주해 산재를 불승인한다.

산재보험법 37조는 “업무와 재해와 상당인과관계”를 규정하고 있으며, 2항에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험급여는 (중략) 근로자의 과실을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거나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해당 재해가 산재보험법 37조2항에 규정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해 발생에 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돼 있음을 이유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함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7. 3. 30. 선고 2016두31272 판결).

또한 법원은 “산재보험법 37조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사망 등이 발생한 경우’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지, (중략) 간접적이거나 부수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7. 4. 27. 선고 2016두55919 판결). 또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은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망한 경우를 말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했다(서울고법 2019. 1. 16. 선고 2018누53063 판결, 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9두33835 판결 참조).

중과실에 의한 수급제한 사유(승인제한 사유)를 법률에 규정하는 공무원재해보상보험이나 국민건강보험법과 달리 산재보험법은 고의·자해행위·범죄행위만 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범죄행위로서 업무상재해 법리의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되기 위해서는 “고의에 의한 행위이거나 중대한 위법행위”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인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단순히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사유로 범죄행위로 단정하고,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산재보험법 법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을 형해화하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로 기능해야 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추락 사망하는 사고와 단순 도로교통법 위반 사고가 산재 판단에서 근본적으로 달리 평가돼서는 안 된다. 사고 행위에 과실이 있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간주해 불승인하는 것은 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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