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마지막 칼럼이다.

주제를 고민했다. 비정규직이나 비정규직운동 관련이면 모양새 좋겠다 싶었다. 언제 그런 걸 따졌냐 웃음이 나왔다. 칼럼 실리는 날이 하필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당일이다. 참 얄궂다. 진솔하게 마무리하자 맘먹었다. 무슨 커밍아웃도 아니면서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강조하면서 쓴다. 내겐 나름 내 진심이 소중하니까. 그뿐이다.

민주노조. 한때 꿈속에도 신이 났던 내 사랑 민주노조란 뭘까. 가입한 평조합원 모두가 주인인 노조. 임금노예 사슬을 끊고 노동해방 세상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으로 떨쳐 나선 진짜 노동자가 주인인 노조가 민주노조다.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자본가 세상을 평등한 노동자 세상으로 변혁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임금인상을 중시하는 이익단체이면서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계급조직으로 역할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제대로 민주노조로 활동한다는 게 참 어렵다. 이런 민주노조들의 총본산으로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2020년 어떤 역할을 자임해야 하나.

우선 전태일의 후예다워야 한다. 전태일의 분신저항정신과 풀빵연대정신을 본받아 계급 내 단결과 계급 간 연대를 씨줄날줄로 엮어야 한다. 1천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규모와 임금격차를 비롯한 전방위적 차별을 극복하지 않고 민주노조운동은 불가능하다. 대중조직인 노조는 쪽수가 힘이고 생명이다. 가입대상자인 노동자들이 동질적인 요구로 단결할 수 있도록 특단의 실천을 지속해야 한다. 정규직노조의 임금인상 낙수효과가 사라져 버린 지금 사업장 내 부당차별과 격차를 최소화하면서 폭넓은 사회연대를 통해 취약계층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해야 민주노조다.

10여년에 걸친 조직적인 투쟁과 지역·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연대운동으로 진성 정규직화를 차곡차곡 실현해 온 희망연대노조가 현시기 대안민주노조의 표상이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있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낮은 곳을 향한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 민주노조의 정체성이다. 1970년의 전태일처럼 2020년 민주노조는 따뜻한 가슴과 치열한 현장실천으로 계급적 단결의 디딤돌이 될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

민주노조 활동가라면 조합원이라면 간부라면 자기 자신부터 실천해야 한다. 나는 비정규직인 적이 없었지만 비정규직 운동을 해 왔다. 정규직노조 간부로 시작해 수차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 속에서 비정규직 운동에 눈떴다. 내가 일했던 이랜드에서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익 쟁취를 위해 함께 싸우면서 감수성도 어느 정도 길러졌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과 서울지역 비정규연대회의 의장,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상황실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운동에 뛰어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투쟁하고 연대했다. 나같이 우유부단하고 모자란 사람도 하는데 민주노조 활동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바뀌고, 요원해 보이는 노동존중세상도 실제로 앞당길 수 있다. 민주노총에는 여전히 그런 활동가들과 조합원·간부들이 많다.

그래서다.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성사를 소망한다. 민주노총이 1노총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국민에게 지지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조합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노총을 보고 싶다. 전체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제 몫을 하는 민주노총을 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힘을 가진 민주노총이 아래로 향한 연대의 선봉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까지 애써 왔지만 좀 더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투쟁하며 만들어 온 민주노조운동 역사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손가락질받아야 하나.

조합원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원들이 적극 참여해서 현장조합원들의 총의를 담아 찬반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그게 민주노조 대의원다운 모습이다. 가결이든 부결이든 격랑 속으로 빠질 민주노총의 내일은 전 세계 유례 없는 전체 조합원 직선으로 차기 지도부가 뽑히면 또 그렇게 수습돼 갈 것이다. 지금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내부 정치가 아니라 민주노총 바깥을 향한 정치다. 김명환 집행부의 내부소통 부족과 리더십 문제와는 별개로, 민주노총을 100만 조합원이 주인되는 ‘민주’노총으로 만드는 건 대의원들의 책무다. 민주노총을 전체 노동자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명실상부한 1노총으로 만드는 건 모든 조합원들의 책무다.

앞으로도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답게 열린 공론의 장에서 답정너식 말고 수준 높은 치열한 공개논쟁을 벌여야 한다. 노조조직률 제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사회적 대화, 정파 갈등, 조직 민주주의, 직선제 선거를 비롯해 논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상층 논란에만 머물지 않고 조합원들이 논의에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면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노조다. 선언과 주장에만 머무는 민주노조는 민주노조가 아니다.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민주노조운동답게 의미 있는 분기점이 되길 소망한다.

[뱀발] 2012년 3월부터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 거친 글을 지면에 싣도록 허락해 준 세계 유일 노동일간신문 매일노동뉴스에 참 고맙다. 독자들께도 감사하다. 다음 칼럼부터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배병길 활동가가 이어받아 쓴다. 건필을 기대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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