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성호 전 전교조 위원장

민주노총이 이른바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문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에서 비롯됐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목표로 진행한다던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의 결과물은 애초 취지에 부합하지 못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의미 있는 시작이라 강변하고 있지만 합의문에 취약계층을 위한 해고금지, 생계 대책 등은 없다. 공문구의 나열에 불과하다. 취약계층 당사자들의 강한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일이다.

합의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타협에 매몰되고 있을 때 노동자·민중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거침없었다. 자본은 해고와 폐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며,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핑계로 파업권 제한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악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넘겨졌다.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이 추진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오직 재벌과 대기업 살리기에 돈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최저임금은 130원 인상에 그쳤다. 복리후생비나 상여금 쪼개기 지급 등을 고려하면 10만원 이상의 실질적인 임금 삭감이라는 폭력적인 결과다. 그런데 취약계층을 대변하겠다던 민주노총은 어디에 있었는가?

노사정 합의문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2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종지부를 찍게 될 듯하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기에 중앙집행위원 절대 다수가 내용과 절차에 여러 차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은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민주적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위원장 독단으로 대의원대회를 치르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심각하다.

김명환 위원장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배포한 동영상 발언 내용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조직의 혼란을 수습하고 노조의 생명인 단결의 구심으로 서야 할 위원장이 분열을 조장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요지는 직선위원장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며 민주노조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물리력을 동반한 ‘일부 강경파와 정파’의 문제라고 치부한다. 취약계층 조합원의 정당한 요구를 어찌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폭력행위’라 할 수 있으며, 노동자 생존권을 위해 노사정 합의문 폐기를 요구하는 31명 중집위원과 절반을 훌쩍 넘는 810명 대의원을 어찌 ‘조직 위에 군림하는 정파’라고 매도할 수 있는가? 직선위원장의 권한도 조합원이 부여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며 무소불위의 독재적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님을 김명환 위원장은 되새기길 바란다. 또한 최근 상황으로 조합원들이 겪어야 할 수모와 자괴감과 분노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민주노총 창립 25년이다. 시기마다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흔들릴 때 민주노총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여전히 현장 조합원들의 힘이다. 지금 겪고 있는 내홍이 민주노총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는 반면교사가 됐으면 한다.

23일 임시대의원대회는 대의원들의 압도적 부결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고 민주노총을 다시 노동의 희망으로 우뚝 세우는 새로운 역사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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