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에 착수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특정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부개정에 나서자 재계가 ‘과도한 경영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잇따라 공동 의견서를 내고 정부 입법안에 대해 “24만개 일자리가 날아간다”거나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전면 재검토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법안을 뜯어보면 재벌에 대한 규제 강화는 미미한 수준이고 과거 추진하던 노동이사제 도입은 아예 빠졌다. 과거보다 오히려 후퇴한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보다 후퇴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21일 한국경총과 전경련·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는 ‘공정거래법 정부 입법예고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 의견서’를 공정거래위에 전달했다.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 △과징금 상한 상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공정거래위는 2018년 11월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20대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되자 지난달 기존 안을 다시 입법예고했다.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현행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회사, 20% 이상 비상장회사에서 모두 20% 이상으로 확대된다. 그러면서 신규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을 상장회사는 20%에서 30%로, 비상장회사는 40%에서 50%로 강화했다. 재계는 “기업의 지분매입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 여력이 감소할 것”이라며 반발한다. 하지만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는 신규 설립할 경우에만 적용되고 기존 지주회사에는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 공정거래 위반 범죄에 대해 공정거래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하는 전속고발제도 전면 폐지가 아니라 가격담합·공급제한·시장분할·입찰담합 같이 사회적 비난이 큰 사건만 공정거래위의 전속고발권을 포기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상 일부 폐지에 그쳐 대통령 공약보다도 후퇴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알맹이 빠진 상법 개정안 실효성 논란

지난달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도 후퇴했다는 비판이 높다.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강화 △주총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 등을 담았다. 6개 경제단체는 공동의견서에서 “상법 개정안이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를 게을리해 손해를 끼친 경우 모회사 주주가 해당 이사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막기 위한 장치다.

개정안에 따르면 모회사 지분 1만분의 1 이상을 보유한 상장회사 주주는 소송을 낼 수 있다. 재계는 “만약 헤지펀드가 311억원을 투자해 삼성 주주가 되면 삼성전자 자회사에 다중대표소송이 가능하다”며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참여연대는 “개정안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100% 지분을 소유한 완전자회사나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모자회사 뿐만 아니라 실질적 지배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30% 이상 지분을 소유한 모회사 주주들도 다중대표소송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과거에 함께 추진됐던 집중투표제나 노동이사제 도입 내용이 아예 빠졌다. 2013년 법무부는 집중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를 담은 입법예고안을 내놨는데 이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집중투표제는 회사나 지배주주가 아닌 주주들이 제안하는 이사후보자 선임 가능성을 높여 독립적 이사회 구성을 가능하도록 한 수단 중 하나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배주주 의사대로 사외이사가 선임되는 현행 단순투표제하에서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기 어렵다”며 “모든 기업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의원 122명이 공동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있던 노동자 대표 추천이사제 역시 빠져 재벌개혁에 대한 대통령 공약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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