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진행된다. 23일 목요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온라인 찬반투표를 한다. 결과에 대한 이런저런 예측이 있는데, 뚜껑을 열어 봐야 알 것이다. 초기의 일방적 분위기가 팽팽한 분위기로 바뀐 것 같다는 얘기는 여러 곳에서 들린다. 합의를 반대하는 일각의 물리력과 쌍욕과 비아냥이 난무하던 초기와는 달리 찬반 주장도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민주노총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합의안 수용이든 거부든 결과가 나오면 깨끗하게 수용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리 두 가지 측면의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첫째, 찬반 논의와 별개로 대의원대회냐 중앙집행위냐 논쟁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논쟁은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민주노총의 어깨를 무척 가볍게 만들어 주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노·사·정 합의는 22년 트라우마다. 논쟁은 늘 첨예했고 폭력사태도 있었다. 사회적 대화는 대의원대회가 판단해야 하는 무거운 사안이었다. 노·사·정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노선적 반대파가 분위기를 그렇게 주도해 왔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노선적 반대파가 중앙집행위 결정을 주장하며 대의원대회 소집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중앙집행위원 다수가 합의에 반대하는 상황에서의 정략적 판단이 빚어낸 현상이다. 한데 이 서명운동은 노선적 반대파의 의도와 다르게, 사회적 대화의 최종 판단 단위를 중앙집행위원회로 하자는 각인을 민주노총 각 단위에 선명하게 새기고 있다. 이번 합의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 개인적으로 서명운동이 고맙고 많이 진행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스웨덴노총(LO)과 사용자연맹(SAF)의 살트셰바덴협약은 40년이 걸렸다. LO 창립은 1898년이고 협약은 1938년이었다. 40년간 LO와 SAF는 총파업과 직장폐쇄로 치열하게 갈등했다. 그러다 협약을 체결했고, 투쟁하며 타협하고 타협하며 투쟁하는 노사체제를 만들었다. LO와 SAF는 스웨덴을 자본주의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주의에 근접한 체제로 만들었다. 민주노총 전신인 전노협의 창립부터 이제 30년이다. 조바심 낼 일이 아니다. 더구나 노선적 반대파가 사회적 합의를 중앙집행위에서 판단하라고 주장하며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길을 가볍게 열어 주고 있지 않은가.

둘째, 반대 흐름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노선적 반대파다. 이들은 소수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대화 자체에는 동의하는데 이번 합의안에는 반대하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합의안의 부족을 얘기한다. 나도 동의한다. 한데 확인해 보니, 이 흐름은 내용의 부족함보다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집행부의 태도와 소통 부족에 더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형식적 절차와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충분하게 소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초보 수준의 지도집행력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국면에서 벌어진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이 흐름이 반대의 다수다. 이 흐름의 형성이 뼈아픈 이유다. 지도집행력에 어떤 문제와 실수가 있었는지 뼈를 깎는 자세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향후의 사회적 대화에서는 합의문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또 어떻게 내부와 소통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차기 집행부가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끝으로 한 번 더 호소한다. 민주노총은 합의안을 승인해야 한다. 맞다. 합의안은 부족하다. 합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집행부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합의안은 노동을 팔아먹지 않았다. 노조 차원에서는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을 뿐이다. 그러나 연 소득 3천만원이 안 되고 노조 가입률도 0.1%에 불과한 노조 바깥 1천만 밑바닥 노동의 처지에서는 시급하고 또 진전된 내용이 많다.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먹은 노동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에 목줄 걸린 노동자, 1만원도 아껴야 해서 동료 회식에 빠지는 노동자, 제주도 가족여행이 평생소원인 노동자 등 서글픈 사연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 처지에서 봐야 한다. 민주노총은 합의의 주체가 돼서 합의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 등을 세게 밀고 가야 한다. 합의안을 거부하면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것은 언론도 시큰둥할 기자회견과 성명서밖에 남지 않는다.

대의원대회 소집을 반대하는 것과 합의안을 찬성하는 것은 별개의 측면이다. 대의원대회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했으나, 합의안 투표는 찬성하겠다는 대의원들이 실제로 있다. 합의안 부족과 과정의 문제로 화가 난 대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호소한다. 코로나19 위기가 노조 바깥 밑바닥 노동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들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 민주노총은 합의안을 승인해야 한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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