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방문했다. 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협력공정 시찰을 마친 대통령 앞에 SK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직원들은 마스크를 낀 채 유리문 너머 대통령에 환호했다. 맨 앞의 직원은 대통령이 유리문에 내민 손을 반대편 유리문에 대고 환호했다. 뒤에 선 직원은 두 손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내일신문 7월13일 2면 사진)

카메라는 대통령 등 뒤에서 직원들을 향했다. 사진 속에 대통령과 마주한 수십 명의 노동자는 톱스타를 만난 듯 기뻐했다. 한눈에 봐도 20~30대 젊은 노동자였다.

반년 동안 코로나19로 사상 최대 실업자가 양산되고, 그 피해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대통령도 수차례 경제위기가 더 힘든 노동자에게 일방으로 전가되는 고정관념을 깨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도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직 93만명에게 월 50만원씩 석 달간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주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22일 발표할 때만 해도 93만명이면 충분할 줄 알았을 거다. 그러나 6월1일부터 신청을 받았는데 20여일 만에 90만명이 신청했고, 지난 5일 신청자가 116만명이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밝힌 특수고용직은 229만명이다. 이마저도 몇년 전 분석치다. 지금은 플랫폼 노동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특수고용직이 더 늘었다. 특수고용직은 고용시장 변화와 노동자 고용에 따른 여러 의무를 회피하려는 기업의 요구까지 겹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위기에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타격을 입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이들을 먼저 찾아야 한다. 누가 대통령을 대기업 SK 노동자 앞에 세우는 이벤트 정치를 기획했는지 답답하다.

한국판 뉴딜에 적절해서 그 공장을 택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불화수소가 반일 테마주라서 그랬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이 찾아가 보듬어야 할 사람은 고용센터 앞에 줄 선 실업급여 신청자나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줄어든 무늬만 자영업자인 특수고용 노동자다.

대통령 스스로 <문재인의 운명>(2011년)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많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으나, 외부 용역 등의 형태로 그 법의 적용을 면탈하려는 움직임을 미리 막지 못했다.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양극화와 비정규직 대책에 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문제를 놓고도 참여정부와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함께 논의하지 못했다. 그 역시 참여정부의 한계로 작용했다.”

‘한국판 뉴딜’도 마찬가지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불안정노동과 이주·여성·성소수자를 위한 ‘그린 뉴딜’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재벌들 민원 해결 창구로 둔갑하려 하고 있다.

산악열차 놔서 관광산업 활성화하자는 토목건설과 학교 컴퓨터 교체까지 ‘한국형 뉴딜’이라 우기는 관료들에게 놀아나선 안 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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