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용어에서 실질적 의미는 빼 버리고 이미지만 활용하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한국판 뉴딜’에서도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개를 만들겠다는 선언 외에 ‘뉴딜(New Deal)’이라 할 만한 내용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용어를 빌려 온 뉴딜은 1929년 대공황 발발 이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을 일컫는다. 우리 사회에서 ‘뉴딜’은 테네시강 유역개발 같은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뉴딜 정책 핵심은 자본에 대한 규제와 노동기본권 증진 정책이다. 연방정부의 조정 기능을 강화해 대기업을 규제하고 금융·통화개혁을 통해 자본의 투기를 억압하려는 것이 정책의 한 축이었다. 또 다른 한 축은 최저임금 보장, 노동시간 최장 한도 규제 등을 통한 고용·임금의 보호와 함께, 노동자 단결권·단체교섭권 등 노동기본권 법적 보장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규제 제도 도입이었다. ‘와그너법’이라 불린 전국노동관계법·사회보장법의 제정은 뉴딜의 대표적 입법이었다. 전국노동관계법 입법을 주도한 와그너 상원의원은 소득분배 개선과 경제·사회개혁에 있어 노조의 역할이 크다고 봤고, 진정한 노사협력은 노조가 사용자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출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뉴딜’의 이름은 빌려 왔지만 그 실제 내용은 따르지 않고 있다.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과 같은 재벌·대기업 살리기에는 돈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해고금지와 같은 최소한 고용유지를 강제할 조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위기라는 명분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은 사실상 삭감되는 수준으로 결정됐고, 법정 연장근로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킬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는 또다시 확대됐다. 무엇보다도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사실상 추진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개악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또다시 입법예고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ILO가 주최한 세계 정상회담(Global Summit)에서 특별연설을 했다. ‘K-방역’이라 할 만큼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50여명의 세계 정상 중 사실상 첫 번째로 연설이 배치됐다.(문재인 대통령 연설 동영상은 https://global-summit.ilo.org/en/event/leaders-day#1831DMU 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한국의 노사정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했으며, 지역 노사정이 상생협력해 지역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사정 선언문의 내용과 절차를 둘러싸고 민주노총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위기 극복의 진정한 동력인 노동 3권 보장을 가져올 만한 조치는 없다는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실제 내용은 없는 ‘노사 상생협력’ 이미지는 대내외적으로 이미 확보한 셈이다.

이번 ILO 세계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다시 한번 약속했다. 1991년 ILO 가입 이후 30년째 우리가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결사의 자유 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이 국제노동기준의 ‘기본’인 이유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평화를 확보하는 핵심적 수단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ILO 자체가 1차 세계대전의 비극적 경험 속에서 다시는 이러한 인류 절멸의 위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로 탄생했다. ILO 헌장의 부속서인 필라델피아 선언은 세계 경제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채택됐다. 공황과 빈곤, 세계대전이라는 위기 속에서 ILO 헌장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에 필수적”이며 “결핍과의 전쟁은 노·사·정 대표가 동등한 지위에서 민주적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기본 원칙을 천명했다.

루스벨트의 뉴딜의 정식 명칭은 ‘잊힌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위기에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대타협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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