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노사정 합의안을 민주노총 조합원과 대의원이 자기 눈으로 읽고 자기 머리로 판단하게 하자”는 필자의 칼럼에 대해 정반대 입장에서 고견을 전한 양동규씨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글에서는 양동규씨가 제기한 몇 가지 쟁점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현 시기 민주노총 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첫째,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 ‘상병수당’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이들 요구는 합의안 곳곳에 반영돼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다수는 핵심 요구가 ‘워딩(wording)’ 그대로 들어가지 않았으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이다. 김명환 집행부는 5개장 64개 조항에 핵심 요구의 단초가 들어가 있으니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의견이다. 결국 합의안을 둘러싼 해석과 평가의 문제인데, 그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중집위원 다수는 중집에 있다는 것이고,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면 중집에서 끝내자고 할까, 아니면 최소한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할까. 조합원 총투표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노조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닐까.

둘째, 양동규씨는 위원장이 “임시대대를 열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며 “중집의 심의·의결 없는 개인 소신만 남았다”고 지적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노총 규약 어디에도 중집위원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위원장이 대의원대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집행부는 노사정 합의안이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고, 중집위원 다수는 합의안에 문제가 많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를 대비해 민주노총의 헌법인 규약은 위원장의 대의원대회 소집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100만 조합원은 물론 2천만 노동계급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을 두고 집행부의 판단과 중집의 판단이 충돌할 때 그 조직적 판단을 대의원대회에 구하는 것은 노동운동 원칙상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닐까.

셋째, 양동규씨는 자신의 글에서 위원장 개인을 부각하지만, 중집 성원 중에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노사정 합의안에 동의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이를 대의원대회에서 판단하도록 하자는 입장은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수석부위원장과 사무총장을 비롯한 집행부 전체의 입장이며 중집 내부에서도 소수의 지지를 받는 견해인 것이다. 따라서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나 “독선”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감정적 선동에 불과하다. 소수의견 보장과 관련해 양동규씨가 평소 했던 주장을 돌아보기 바란다.

넷째, 양동규씨는 “민주노총은 매 교섭에서 나온 요구와 주장을 공개하고, 교섭속보를 통해 현장과 소통했어야 했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말하는 현장이 민주노총 산하가 아니고, (가맹조직인) 산별노조와 (직할조직인) 지역본부 산하에 자리 잡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직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면, “현장과 소통”해야 하는 책임 주체가 어디인지도 분명해진다. 다름 아닌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인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최종 합의안을 중집위원들이 중집 회의석상에서 바로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그 합의안을 중집위원 자신들이 대표로 있는 산별노조나 지역본부에 전달해 대의원대회나 조합원 토론 등 “현장 소통”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다섯째, 양동규씨는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한쪽에서는 의미 있다고 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독소조항”이라고 보는 합의안을 두고 대의원대회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노조 민주주의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양동규씨는 “합의안을 두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에 다름 아니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한다. 위원장이 대의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구하기 위해 소집한 대의원대회에서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 “폭력”이라니.

전 세계 어디에도 정상적인 노총이라면 그 위원장을 산하 가맹조직 조합원들의 투표로 뽑는 경우가 없다는 필자의 주장을 반민주적이라 몰아세우고서는 “다수의 힘‘으로 ‘조합원 직선제’를 밀어붙여 평범한 조합원들을 정파들의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밀어 넣으며 “선택을 강요”하는 “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양동규씨는 돌아보기 바란다. 그동안의 과정이 어찌 됐든 이제 위원장도 조합원 직선제로 뽑는 민주노총이다. 2천만 노동계급의 안위에 직격탄이 될 노사정 합의안 같은 중요한 결정이라면 대의원대회 판단을 받은 이후에도 민주노총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다면 직접 100만 조합원들에게 찬반을 묻는 것이 양동규씨가 평소 견지해 온 입장에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노총은 역사적으로 사회적 대화 참가와 승인 여부를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해 왔다. 그런데 양동규씨는 “가장 좋은 해법은 위원장이 스스로 합의안 폐기를 선언”하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중앙집행위와 가맹 지역본부 간부, 100만 조합원과 함께 노동개악 저지와 전태일 3법 쟁취에 나서는 것”이라고 썼다. 민주노총 규약에 명시된, 100만 조합원의 총의를 모아 내는 대의원들의 역할은 일부러 빠트렸다. 민주노총의 진짜 주인인 조합원과 대의원이 나설 때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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