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코로나19 국난 시대, 노동의 역할은 무엇인가’란 제목에 낚이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월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이 칼럼 작성으로 조급해진다. 무엇을 쓸 것인지를 두고서 궁리하다가 마음만 급해진다. 그러다가 매일노동뉴스 홈페이지에서 지난 한 주 동안 보도했던 기사들을 찾아보게 된다. 어제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보니, 코로나19로 쑥대밭이 돼 버린 이 세상에서 노동의 역할을 찾고자 하는 것이겠다 싶었다. 매일 기십만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시대에 노동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조대엽)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성경륭)가 주최하고 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대한상의·한국경총이 후원한 토론회 ‘2020 한국사회비전회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 협력과 연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거기서 연구자와 노사정을 대표한 인사들이 모여 발표하고 토론했다. 내 흥미를 끈 것은 연구자의 주제발표와 노동계 인사들의 발언이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매일노동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빠짐없이 읽었다.

2. 이날 ‘국난 시대 노동의 역할과 과제’ 세션에서 주제발표를 한 장홍근(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 사태라는 새로운 도전에 부합하는 대안적 노동체제가 필요하다”며 “공정 기반 노동시장, 연대 기반 노동력 재생산체제, 혁신 주도 작업장체제 형성 등 구조개혁을 위해 기존의 노사정과 시민참여형 개혁연합 노동정치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의 조속한 비준과 동의, 초기업적 교섭과 단체교섭 효력 확장, 대화와 타협의 노동정치 활성화, 자율적 사회적 대화체제 전환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은 저항주체를 넘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신노동체제 형성주체로 위상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분절구조 해소를 위한 연대지향 노동운동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 등 비임금 노동자 권익 대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 읽는데, 나는 뭔가 새로운 세상을 열 노동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이 그걸 하겠다고 하면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발표 원문을 읽지 못하고서 보도된 기사 내용만 읽어서 그런 것인지 도무지 막연하기만 하고 골치만 아팠다. 위 기사에서 발표자가 코로나19 국난 시대에 노동에 주문한 역할을 보면, 저항주체를 넘어 이제는 신노동체제 형성주체로서 노동시장 분절구조 해소를 위한 연대를 지향하고 특수고용·플랫폼노동 등 비임금 노동자 권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면 되는 것인가. 노동시장 분절구조 해소를 위해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철폐 등을 위해, 특수고용‧플랫폼노동 등 비임금 노동자의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해서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끝장 투쟁을 전개하면 되는 것인가. 최근 민주노총에선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잠정합의안을 두고서 논란이다. 잠정합의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정규직·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을 포함한 노동자의 해고금지가 포함돼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고용보장을 빼고서 노동자 권리를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이 신노동체제 형성주체로서 발표자가 해야 할 일로 주문하고 있는 걸 제대로 하자면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한 저항주체로서 역할을 포기해서는 되지가 않는다.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노라고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그걸 위한 투쟁은 코로나19 시국이기에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도대체 저항 없이 가능한 신노동체제 형성주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기본)협약 비준은 대한민국 헌법이 노동자에게 보장한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 행사를 위해 해야 할 당연한 국가권력의 일인 것이다. 사실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전면적으로 개폐한다면 비준은 필요하지도 않다. 초기업적 교섭과 단체교섭 효력 확장을 위해 근본적으로는 획기적으로 노조 조직률을 높일 정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하며, 대대적인 노동의 조직화 없는 대화와 타협의 노동정치 활성화와 자율적 사회적 대화체제로의 전환은 기회주의적이고 배신적 노동정치를 양산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 사태를 내세운 권력 주도의 노동체제 전환 시도는 혁신을 가장한 노동 소외의 구조개혁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3. 계속해서 이날 토론회에서 허권(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금융 노사가 함께하는 금융산업공익재단 출범을 통해 사회연대 모습을 보이는 데 단초를 제공했다”고 밝히고, 박해철(공공노련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기시키면서 공공노동자가 반납한 임금으로 공공상생연대기금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금융노조가 조합원 임금 일부를 출연하고 금융산업 사용자가 일부를 출연해 공익재단을 출범시켜 운영하고,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실시를 폐기시키면서 그에 따른 조합원 임금을 재원으로 한 연대기금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노라고, 이를 ‘코로나 시대 협력과 연대’을 위해 참고할 모범사례로 소개한 것이겠다. 공공기관·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같은 열악한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일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고, 마땅히 칭찬해야 할 일이다. 연대를 위한 희생은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기능하는지를 가지고 살펴야 한다. 과연 그것이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에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기능하고 있을까. 해당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에서 노조가 사내협력업체 비정규직처럼 그 기금과 재단이 지원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들을 자신의 조합원으로 적극적으로 조직해서 그들을 위한 교섭과 투쟁을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해 왔던 것일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기금과 재단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부끄러워도 숨길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거기서 노동운동은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김현정(우분투사회연대연구소장)은 “노사민정이 코로나19 위기 속 불평등에 맞서 머리를 맞대며 사회적 대화와 협력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최자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조대엽은 “국난 극복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연대와 협력”이라며 “우리가 세계 선도국가가 되려면 강한 시민사회와 유능한 정부의 조합이 빚어낸 ‘K-데모크라시’ 성패에 달려 있다”고 인사말을 했다. 박병석(국회의장)은 “위기는 소수 엘리트 힘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며 “노동과 기업, 정부와 시민사회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고 축사를 했다고 매일노동뉴스는 보도했다. 한 마디로 코로나19라는 국난 극복을 위해서 노사민정이 대화하고 연대와 협력하자고, 특히 노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노동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노동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들이 했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전자다. 국난이니 그 극복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저 조선시대에 왜란·호란 시기에 그 극복을 위해 상놈·노비와 백정까지도 나서 싸웠던 것처럼 오늘은 코로나19라는 국난에 노동도 하나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노비가 국난 극복된 세상, 즉 왜적을 물리친 세상에서 도로 노비로 살아가야 한다면 아무리 임금이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나서 달라고 호소한다고 해도, 그 호소는 조선의 노비에겐 종묘사직은 남의 것일 뿐이니 노비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워 달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협력인지, 국난 극복으로 올 세상은 노동에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란에서 제 목숨을 걸고 나서 왜적과 싸운 조선의 노비는 그 공을 인정받아 면천할 수가 있었다. 정말로 오늘 이 나라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국난에 비견될 수 있는 국가적 위기인 것이라면, 그래서 노동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노동의 자유와 권리는 어떻게 보장될 것인지 노동자들에게 말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저 ‘노동존중사회 실현’이라는 막연한 말 말고,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행동으로 말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노동의 협력을 강조해서 말할 뿐이었다. 그러니 기껏해야 현상유지가 전부였다. 이에 대해서 아무개는 코로나 사태에서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고용유지를 위한 노력을 해 왔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것은 사용자의 해고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정리해고 등 해고제한을 위한 법제도 개선은 없다. 분명히 노동에 우호적인 말은 넘쳐나지만 그뿐이다. 헌법을 포함해 법령이 이미 보장하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노동기본권,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그것이야 말로 코로나19 시대에 권력이 노동에 협력을 구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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