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내년도 최저임금 삭감, 대량해고 사태 우려’

이런 제목의 기사가 언론에 나온다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생뚱맞은 얘기 같지만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들이 여전히 삭감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은 “깎아야 산다”고 하소연한다. 이들의 억지대로 최저임금이 삭감되면 어떻게 될까.

최저임금법 6조2항에는 “사용자는 이 법에 따른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아니 된다”고 적시돼 있다.

다시 말해 내년 최저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항의 취지는 최저임금법 도입 당시 평소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다가 최저임금법을 빌미로 임금의 저하를 막기 위함이다. 아마 1986년 법을 만들면서 ‘최저임금 삭감’은 생각도 못했을 터다.

이 조항으로 인해 사용자들은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깎지 못한다. 새로 채용하거나 재계약 노동자들에게만 삭감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니 “깎아야 산다”고 외치는 사용자들이 기존 직원들을 해고할 수 있는 묘수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누가 할 수 있겠나. 최저임금 삭감으로 인한 ‘대량해고 사태’는 그저 우려일 뿐일까.

물론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이미 최저임금 논의에 만연하다.

올해 최저임금 노동자 월급은 179만원이다. 사용자들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기어코 이들의 월급 2만원(마이너스 1%)을 깎아야겠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임금이 필요한가”라는 논의는 온데간데없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여야 하나”라는 이야기가 넘친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사용자들은 위기 탈출의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자 월급 2만원을 깎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에 행사되는 대기업의 갑질과 골목시장까지 잠식하는 횡포에 대해 노동자들과 손을 잡고 함께 싸워야 한다. 쩨쩨하게 직원 월급 깎는 것보다 이 정도 스케일을 가지고 있어야 어디 가서라도 ‘경영’을 한다 할 수 있지 않겠나.

덧붙여 현재의 위기는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외부 충격에 의해 기업들이 쓰러져 나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내부 감염병으로 인한 소비와 이동 제한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한다. 최저임금을 깎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어찌 됐든 노사 의견 대립이 팽팽한 올해 역시 지난 2년과 마찬가지로 공익위원들의 손에 최저임금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평론가였던 고 정운영 선생은 1992년에 쓴 칼럼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현 최저임금위)가 결정한 최저임금이 실로 최저임금이 아니라면, 그들(공익위원)은 결국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셈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증언할 때는 위증죄가 성립되지만, 최저임금이 아닌 것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할 때는 무슨 죄가 성립되는지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 수준을 인상률이란 얼토당토않은 숫자놀음으로 산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대단한 착각이고 실수였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다뤄야 할 사항은 천만장자의 고민이 아니라 노동자의 목숨이기 때문이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올해만큼은 최저임금이 공익을 위한 결정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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