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행과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44만6천434명이 동참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보여줬다. 지난 8일 이 청원에 청와대가 내놓은 답변은 알맹이가 빠졌다.

윤성원 국토교통비서관과 조성재 고용노동비서관이 발표한 청와대 답변의 핵심은 갑질 피해 신고센터 운영, 아파트 관리규약에 폭언금지 포함(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 지방정부 관리감독 강화, 입주민 인식개선 캠페인, 아파트 노무관리 자가진단, 내년부터 단기계약 아파트 근로감독으로 요약된다. 올해 하반기까지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동주택 경비원 제도개선 TF’를 구성해 경비원 업무범위와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비서관이 답변한 내용은 같은날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경찰청·국민권익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공동주택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대책’ 그대로다. 고인이 사망하고 두 달이 지난 뒤 나온 청와대 답변과 정부 대책은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신고를 못해서, 인식수준이 낮아서, 관리감독을 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아파트 규약에 폭언금지를 넣고 단기계약 아파트 근로감독을 하면 효과가 있을까. 나열된 대책에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과 만연한 단기계약을 근절할 법·제도 개선책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따로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서울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과 권익보호 종합대책’에 고용승계 모범단지 인센티브나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 괴롭힘 금지 규정 신설, 경비노동자 공제조합 설립 지원, 아파트 경비노동자 전담 권리구제 신고센터 설치, 입주민 교육 활성화 등을 담았다.

고용승계나 괴롭힘 방지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 서울시 대책과 청와대·정부 발표가 무엇이 다른지 도통 모르겠다. 그나마 서울시는 종합대책에 경비노동자 조례 제정 같은 제도개선책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경비노동자에게 갑질을 했을 때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도록 공동주택관리법상 벌칙규정을 신설하자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이마저도 정부 대책에 포함되지 못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9일 제3자에 의한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경비노동자 인권법’으로 불렀다.

지금도 어디선가 갑질에 숨죽이고 있을 경비노동자를 보호할 제도는 누구도 아닌 청와대와 중앙정부가 먼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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