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여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의결이 무산됐다.

김명환 집행부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서 만들어진 합의문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앙집행위를 넘어 가맹·산하조직 조합원들의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을 요청했다. ‘투쟁과 교섭을 병행한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조합원 직선제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위원장의 당연한 행보로 판단된다.

집행부가 동의한 5개 장에 걸쳐 64개 실천방안을 다룬 10쪽의 합의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는 가늠하기 어려운 침체를 겪고 있다”로 시작한다. 전문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생존을 걱정하고, 비정규직·하청업체·특수형태근로종사자·장애인 등 취약계층들에게 그 어려움이 집중되고 있다”며 “기업이 위기에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하고, 하나의 일자리라도 더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고 명시돼 있다. “노사정 대표자들은 국난에 준한 위기를 맞아 기업의 힘만으로는 고용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며 노사정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비상한 각오로 이번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며 대화 배경을 밝혔다. 경제활동 일선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기업의 힘만으로는” 고용유지가 힘들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들어 세계적으로 4억명분의 전일제(full-time)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물론 민주노총이 요구한 ‘해고금지’와 ‘총고용 보장’ 문구는 합의문에 담기지 못했다. 이는 교섭단의 문제라기보다 현재 노사정 힘 관계의 결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해고금지와 총고용 보장은 △고용유지 지원제도 확충 △특별고용지원업종 기간 연장 및 추가 지정 △고용유지 지원제도 사각지대 축소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간 협업 강화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의 고통분담 △상생 협력 확산 등을 정리한 합의문 1장에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고 판단된다.

“노동계는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는 문구를 ‘투항 선언’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하지만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단축” 및 “휴업”과 관련해 노사가 “협력”하는 것은 노동자 삶의 터전인 기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까. 특히 고용유지를 위해서라면.

기업은 노동자의 적이 아니다. 기업은 생산 현장인 동시에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노사관계)가 이뤄지는 마당이자 계급투쟁의 장이다. 어느 나라에도 ‘기업 죽이기’를 하는 노조는 없다. 노동자라면 사용자 이상으로 자기가 일하는 기업이 잘 되길 바란다. 현대자동차가 망하면 좋겠다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이 있을까. “기업이 (코로나19) 위기에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들을 위해 노사가 협력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 살리기 및 산업생태계 보전’을 명시한 합의문 2장에서 제안된 “(기업의 생존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재정·금융·외환 등 거시정책 수단들의 적극적 운용”과 이를 위한 “금융기관과의 협력 강화” “기간산업 안정기금 등 자금 조달”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회복 및 투자여건 개선” “(공공조달 분야가 선도하는) 임대료 인하, 착한 프랜차이즈 운동, 선결제” 같은 대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에 관련된 3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 금년 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수립”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정부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자영업자 등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소득정보 현행화, 유관기관 간 정보공유 체계 강화를 추진”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 대상을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층으로” 한다는 내용도 있다. “고용센터의 상담 인력 및 인프라를 확보”하고,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일반회계 지원 확대 등 재정안정성 강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도 명시했다. 고용위기업종 재직노동자를 위해 직업훈련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자라고 아쉽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일각에서 말하듯 “야합·배신”이라 볼 필요는 없다.

팬데믹 위기 국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4장은 ‘국가 방역체계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에 관한 것이다.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공동 노력”하고, “정부는 감염병 대응과 지역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공공병원을 늘리고” “지역공공-민간병원의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립 공공의료대학 설립 등을 통해 전문 의료인력을 안정적으로 양성”하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고, “가족을 돌보기 위한 휴가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은 바람직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심으로 ‘이행점검 및 후속 논의’를 할 것을 명시한 5장은 코로나19 위기라는 비상 상황에서는 불가피해 보인다. 국가 재정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새롭게 예산과 인력을 편성할 필요 없이 기존 기구를 실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라는 죽은 풍차를 살아 있는 괴물로 오판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명환 집행부가 동의한 잠정합의를 ‘어찌하여 물잔에 물이 절반밖에 없느냐’가 아니라, ‘어렵사리 애써 절반을 채웠다’는 마중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건너갈 강 너머에 있는 선착장이 아니라 바로 앞에 놓인 첫 디딤돌, 즉 ‘계급투쟁’의 시작으로 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동계 선배는 “버스는 떠났다”고 하지만, 필자는 민주노총 일각에서 야합으로 평가하는 합의문을 민주노총 조합원과 대의원이 자기 눈으로 읽고 자기 머리로 판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운동 상층부의 ‘정파적’ 판단이 아니라, 점점 비어 가는 주머니에서 꼬박꼬박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진짜 주인인 조합원들의 건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