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가 21대 국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평등법)을 조속히 제정해 달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국회가 참조할 평등법 제정안 시안을 채택했다.

최영애 위원장은 30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교육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결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인권위는 이에 앞서 전원위원회를 열고 평등법 제정 의견표명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기존 차별금지법 대신 평등법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평등법 제정 국제사회 요청에 응답할 때”=최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다수 국제조약 당사국이고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규범을 국내에 실현할 의무가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이미 평등법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이런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가 2006년 정부(국무총리)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뒤 국회(17~19대)에서 6차례 법안이 발의됐으나 입법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 중 2건은 발의가 철회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발의조차 못했다. 인권위는 21대 국회에서만큼은 꼭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장은 “평등법 제정을 위한 공감대가 무르익었다”며 “국민 상당수가 나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누구도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나와 내 가족도 언제든 차별받을 수 있기에 차별을 해소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적지향’ 포함 평등법 제정안 시안 공개=인권위는 국회에서 평등법을 만들 때 참조하라고 제정안 시안을 공개했다. 총 5개장 39개조로 구성된 시안에서 차별개념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 광고로 구분했다. 차별사유는 성별 등 21개를 예시적으로 규정했다. 일부 종교계가 반대하는 ‘성적지향’이 포함됐다. 최 위원장은 “21개 사유를 명시하되 ‘등’으로 해서 사회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차별영역은 고용, 재화·용역, 교육·직업훈련, 행정·사법 절차·서비스로 나눴다. 국가와 지자체의 차별시정 책무를 규정하고, 5년 단위 차별시정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차별 구제수단으로 시정권고, 소송지원, 임시·적극조치 명령, 가중적 손해배상, 가해자 입증책임, 불이익조치 금지, 정보공개 의무를 뒀다. 최 위원장은 “평등법은 21대 국회의 중요한 입법과제가 돼야 한다”며 “모두를 위한 평등이란 목표를 향해 결실을 맺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은 국회로, 정의당 “환영” 거대 양당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최 위원장은 전날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당론발의한 정의당에 대해 “정말 수고했고 애썼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정의당 법안을 무조건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지지까지 얻은 정의당은 환영했다. 정의당은 논평을 내고 “최 위원장 말대로 차별금지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원리를 실현하는 길”이라며 “이제 남은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전향적 입장 변화”라고 말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미래통합당은 일부 조항을 제외한 제한적 차별금지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슈퍼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관건이다. 정의당은 “노무현 정부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다”며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후퇴했지만 이제는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올 때”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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