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은성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연세대는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는다. 입찰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용역업체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간접고용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 개로 조각난 학내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6개의 용역업체 중 2015년부터 연세대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A업체 이야기다.

연세대와 A업체의 만남은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the First and the Best”를 외치던 연세대는, 그 비전을 실현하듯 사립대학 중 최초로 청소노동자 인원감축과 전일제(8시간 근무) 일자리의 파트타임(3~4시간 근무) 전환을 강행했다.

그 결과 A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유례없는 노동강도를 감당해야만 했다. 주어진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30분~1시간 빨리 출근했다. 이러한 ‘오전 무료노동’에 더해 근로의무가 없는 토요일 근무를 강요받고, 연차도 사용하지 못해 명절이 아니면 쉴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업체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도덕조차 없었다. 지난해 12월에는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며 청소노동자에게 산타모자를 강제로 씌우고, 이를 거부한 노동자의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 지난 7월에는 안전장비도 없이 정화조 소독 업무를 부여해 청소노동자가 쓰러질 뻔한 적도 있다. 이에 대해 A업체 사장은 “정화조를 청소하라고 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할 뿐이었다.

A업체가 지난 5년간 저지른 각종 법 위반 행위, 부당한 업무지시, 직장내 괴롭힘, 부당징계·부당노동행위 중 일부만 적었는데도 이미 원고의 상당 부분이 할애됐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업체를 구태여 비호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A업체 사장이 청소노동자 인터뷰를 하던 학생의 얼굴을 무단으로 촬영하고, 휴대전화를 뺏으며 신분증을 요구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연세대 총무처는 지난해 12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대로 A업체를 퇴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부질없는 것이 약속이라 했던가. 연세대는 지난해 12월 인수인계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입찰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A업체와의 계약을 2020년 3월 말까지 연장했다. 4월1일에는 코로나19 시기에 업체가 변경돼 청소노동자가 바뀌면 감염위험이 있다며 올해 12월까지 9개월 계약을 연장했다. 그런데 연세대와 같은 재단인 세브란스병원은 아무 문제 없이 입찰을 진행했다. 사실상 편법적인 수의계약으로 1년을 연장한 셈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계약을 연장한 뒤 입사 1년이 된 조합원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사건 전말은 이러하다. 2019년 6월에 입사한 한 노동자가 처음 근로계약서 작성시 용역계약이 만료되는 2019년 12월 말까지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용역계약이 연장되자 근로계약도 2020년 3월 말까지 연장했다. 그 후 총괄 반장이 코로나19로 계약이 9개월 연장됐다고 말하며 근로계약서를 내밀자, 자신의 근로계약서만 다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노동자가 계약기간을 보지 않고 서명했더니 두 달 만에 해고를 통보받았다. 회사가 노조활동을 주도하던 해당 조합원에게만 이달 4일 만료되는 두 달짜리 근로계약서를 제시한 것이다.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연세대에서 일하는 A업체 소속 청소노동자 약 50명 중 47~48명은 근무한 지 1년이 지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계약을 연장해 왔다. 2019년 일부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자 조합원을 해고하기 위해 입사 1년에 맞춰 재계약한 것이다. 회사는 피케팅을 이유로 해당 조합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물론 무혐의로 결론 났다.

이를 해결하고자 조합원 결의 대회를 하고, 낮에는 중식 선전전을, 밤에는 철야농성을 했다. 그러나 A업체는 “이는 정당한 계약만료이며, 불만이 있으면 법대로 하자. 이제 앞으로 기간이 만료된 근로자는 내보내려고 한다”며 적반하장이었다. 사태를 해결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대학측은 “조합원이라고 특혜를 줄 수는 없다”고 뒤로 물러섰다.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다수는 “심정적으로는 안타깝지만 계약기간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인데, 노동자분의 잘못이 있는 것 같다”고 속 편한 소리만 했다. 결국 계약만료일은 다가왔고, 원청을 포함한 3자 교섭을 진행했음에도 해고를 철회시키지는 못했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현상이 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청소노동자의 잘못에만 집중하고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결정적 원인에는 눈을 감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공동체 규범이라면 그 누구도 차별과 억압, 구조적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해고는 생존권 문제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는 그저 비유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가까이 있는 청소노동자의 실수는 운석만큼 크게 보이고, 간접고용 아래 비정규직의 취약한 권리는 머나먼 별나라 이야기로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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