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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줄이자고 사용자 책임 감추는 경비업법]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나는 대한민국 ‘경비’입니다
▲ 자료:사이버경찰청(2019년 12월)

#1. 경기도 시흥에서 7년째 아파트 경비노동자로 일하는 강호영(가명)씨는 지난해까지 입주민에게 거수경례를 해야 했다. 손주뻘 되는 사람들에게까지 거수경례를 하는 게 난감할 때도 있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하면서 최저임금을 받는다. 점심시간도 보장되지 않고 휴게공간도 없는 탓에 식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비트실에서 5분 만에 해결한다.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강씨의 임금은 그대로다. 대신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휴게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쉬지도 못한다. 입주민들이 택배 달라, 수리해 달라며 수시로 찾는다. 입주민에게 쉬는 시간이라고 말했더니 관리사무소에서 난리가 났다. “재계약할 때 두고 보자”는 소리도 들었다.

강씨는 “나이 들었다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항변해 봤지만 아파트 관리소장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왜 여기 와서 그런 소리를 하냐”고 역정을 냈다.

#2. 올해 20년차 베테랑 은행 현금수송원 채종수(가명)씨는 올해 갓 입사한 신입직원과 임금이 똑같다. 최저임금만 받기 때문이다.

입사 당시 950%였던 상여금은 지난해 500%까지 줄었다. 중식비와 교통비도 사라졌다. 회사가 수년 전부터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하려고 미달하는 임금만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에서 끌어왔기 때문이다. 연장근무와 휴일근무를 밥 먹듯이 하면서 특근수당을 받아 겨우 먹고산다.

회사는 늘 경영이 어렵다고 한다. 은행들이 최저낙찰제로 도급을 주기 때문에 현금수송업계는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금수송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일은 힘든데 워낙 임금이 적다 보니 입사하는 직원보다 퇴사하는 직원이 많다. 상시채용을 해도 인력은 늘 부족하고 일은 넘친다. 채씨는 오늘도 길 위에서 점심을 때운다.

#3. 인천 외항에서 특수경비원으로 일하는 김만기(가명)씨는 인천항 출입 차량 검문검색과 순찰, CCTV 모니터링 업무를 한다. 얼마 전 중국인들이 충남 태안 해변가로 밀입국한 사건 때문에 업무가 크게 늘었다. 김씨도 최저임금만 받는다. 2018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3조2교대였던 교대근무가 4조3교대로 갑자기 변경됐다. 그 덕에 연장근로수당이 줄면서 임금이 20%나 삭감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대제 개편에 따른 인력을 채용하지 않아 3명이 했던 일을 2명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당하다고 따지면 더 힘든 근무지로 인사이동될 뿐이다. 점심시간도 따로 없고 근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탓에 식사는 사람 없는 공터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아파트 경비원 강호영씨와 은행 현금수송원 채종수씨, 항만 특수경비원 김만기씨는 화재나 도난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을 한다.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지지만 권리는 뒤따르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않는다. 온갖 갑질과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 이들이 모두 경비업법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혹시 경비업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민간경비업체 위한 경비업법
곳곳에서 문제 일으켜


경비업법은 경찰력 부족을 민간경비로 메우기 위해 1976년 제정됐다. 공공행정의 몫인 치안을 민간 손에 맡기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고 만든 법이다. 그래서 경비업법은 경비업 ‘도급’을 전제로 한다. 도급은 사용자 책임은 피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데 효과를 발휘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아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경비원 업무범위다. 경비업법은 경비원에게 경비 외 업무는 금지한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은 생활폐기물 분리수거, 주차관리, 입주자 우편물과 택배물 보관·전달까지 경비가 아닌 관리업무가 주된 일이다.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업무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자 올해 초 경찰청은 이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의 발표는 가뜩이나 불안한 경비원의 고용을 위협하는 칼날이 됐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은 경비업법 위반 단속 전 계도기간을 당초 지난달 31일에서 올 연말까지로 연장하고 부랴부랴 경비업법과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논의에 들어갔다. 법 개정 방향은 경비업무 외 관리업무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쪽으로 모아진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3천4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비(방범)업무 비중은 31%에 그치고 나머지 청소·조경·분리수거 같은 관리업무가 69%나 된다. 그런데 경비원 업무범위를 관리업무까지 포괄하게 될 경우 근로기준법의 ‘감시·단속적 근로’ 적용의 타당성 문제가 불거진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지금까지 감시·단속적 근로라는 이유로 24시간 일을 시키면서도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았는데 관리업무를 할 경우 이런 근거가 사라진다”며 “다만 고용불안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교대제 개편을 통해 경비노동자도 밤에는 집에서 가족과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시·단속적 근로 적용 여부가 법 개정의 열쇠가 되다 보니 국토부도 경찰청도 ‘논의 중’이라고만 할 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청원경찰 비용절감 목적으로 만든 특수경비원제도
민간인 특수경비원 쟁의행위 금지


경비업법에 특수경비업무가 들어간 것은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즈음이다. 그 이전까지 공항을 비롯한 국가중요시설 경비·보안 업무는 청원경찰이 맡았다. 특수경비원 관련 조항이 신설되면서 민간도 경비업 허가를 받아 특수경비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청원경찰의 경우 공무원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청원경찰법에 따라 고용과 봉급·피복비·교육비, 각종 수당과 보상금까지 보장받는다. 청원경찰의 업무를 민간인 특수경비원으로 이전하면서 경비업법은 다시 한번 비용절감과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유력한 수단임을 입증했다.

인천항 보안경비 업무를 보자. 인천항 청원경찰과 특수경비원은 일하는 장소만 다를 뿐 업무는 동일하다. 청원경찰이 퇴직하면 그 자리를 특수경비원이 채운다. 청원경찰은 연 7천만원 수준의 임금을 받고, 특수경비원(계약직)은 별다른 수당 없이 최저임금만 받는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2배 넘는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수경비원이 인천공항 때문에 탄생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 3년간 줄기차게 “경비업법 때문에 특수경비원을 직접고용할 수 없다”고 한 까닭이 이해된다.

무기 소지가 허용되고 법정 직무교육을 이수하는 특수경비원은 일반경비원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인천국제공항 보안경비요원 이민지(가명)씨는 “경찰청 지정 교육기관에서 88시간의 전문교육을 받고 입사했지만 교대근무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 높은 업무 강도, 인격무시와 폭언에 못 이겨 동료 10명 중 예닐곱 명은 퇴사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발전소 특수경비 노동자들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받고서야 감시·단속적 근로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용역업체 횡포도 유사하다. 1인당 1벌씩 지급하는 근무복을 2명이 번갈아 입으라고 한다거나 아예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건은 특수경비업체와 일반경비업체를 가리지 않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특수경비원은 노조를 만들고 노동조건을 바꾸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법으로 쟁의행위가 금지돼 손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청원경찰도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다만 차이는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다. 청원경찰의 경우 직무와 임용·배치·보수·사회보장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반면 특수경비원은 경비업법에서 직무와 의무만 세세하게 명시하고 있을 뿐 권리는 언급되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올해 초 경비업법상 특수경비원 쟁의행위 금지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노동계는 “경비업법이 지금처럼 기형적인 고용구조를 만들어 경비노동자에게 의무만 부여하고 권리를 외면한다면 갑질에 못 이겨 비극적 선택을 하는 경비노동자는 또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경비업의 도급을 전제로 만든 경비업법은 을은 하나인데 갑은 여럿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 7명 중 1명이 산다는 아파트에서 입주민대표자회의는 경비원의 임금과 고용을 비롯한 모든 근로조건을 결정하지만 법원은 일관되게 ‘사용자가 아니다’고 판단한다. 실제 ‘갑’의 위치에 있는 입주민은 공동주택 위탁관리회사로 책임을 미루고 위탁관리회사는 다시 경비용역업체에 모든 사용자 책임을 떠넘긴다.

비록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아파트 입주자대표자회의를 사용자로 보고, 경비용역업체와 공동으로 경비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정을 2016년 내린 적이 있다. 최근 들어 입주민 갑질을 막기 위해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라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의당 노동본부는 근기법 76조의2에 “도급에 의한 사업의 경우는 도급인을, 공동주택의 경우 입주민을 사용자와 동일한 지위로 본다”는 문구를 넣자고 제안했다.

특수경비원도 마찬가지로 경비업법으로 왜곡된 갑과 을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천902명의 보안검색 특수경비원을 청원경찰로 직접 고용하는 것은 그 출발이 될 수 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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