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지난 6개월간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6배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6개월 전보다 소득이 줄었다고 답한 비정규직은 52.8%로 정규직(19.2%)보다 2.7배 높았다. 그런데 실직을 경험했다고 답한 이들 중 76%가 실업급여를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비정규직에게 집중됐지만 이들을 보호할 사회안전망은 부족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직장갑질119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만 19세부터 55세 직장인 1천명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자 중 상용직은 600명, 비상용직(임시직·일용직·시간제·파견용역·사내하청·프리랜서·특수고용)은 400명이다. 이날 공개한 ‘코로나19 6개월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코로나19가 불평등 심화시킬 가능성 커”

상용직 600명 중 지난 6개월 동안 비자발적 실직을 경험한 이는 24명(4%)에 불과했다. 그런데 비상용직 400명 중 26.3%가 실업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비상용직 중 프리랜서·특수고용직(102명)의 경우 27.4%(28명)로 실업을 경험한 확률이 크게 늘었다. 실직 사유는 비자발적 해고(28.7%)·권고사직(27.9%) 등으로 나타났다. 실직 후 실업급여는 비상용직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지난 6개월간 실업급여 수급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실업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129명 중 76%가 실업급여를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실업급여 미수령 이유로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았음(50%)”이 가장 많은 답변을 차지했다. “수급기준 미충족(26.5%)” “자발적으로 신청 안 함(13.3%)”이라는 응답이 뒤따랐다.

코로나19는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심각하다고 답한 비상용직은 18.5%로, 상용직(11.7%)보다 높았다.

코로나19가 주는 불행은 현재에만 그치지 않았다.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귀하의 현재 월 소득은 6개월 전인 2020년 1월과 비교해 어떻게 변화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상용직(19.2%), 프리랜서·특수고용 제외 비상용직(47.7%), 프리랜서·특수고용직(67.7%)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상용직보다 비상용직과 프리랜서·특수고용직이 각각 2.5배와 3.5배 많은 소득감소를 경험한 것이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지만 소득수준에 따라 힘듦의 크기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월평균 149만원을 번 하위 20%의 가구소득은 그대로인 반면 월평균 1천115만원을 버는 상위 20%는 6.3% 증가했다.

“고용보험 미가입자, 임시로라도 가입시켜야”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는 “가장 중요한 대책은 해고를 최대한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여러 차례 이와 관련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간접고용과 사내하청이 배제돼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권 변호사는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을 포함한 비상용직의 경우 근근이 일하고 있지만 소득이 감소한 분들도 고용유지지원금에 포함돼야 한다”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은 93만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임시로 고용보험에 가입시켜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학술논문 ‘아픈 노동자는 왜 가난해지는가(2017)’를 인용해 “정규직은 아프면 휴직을 선택하거나 유급휴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프리랜서·특고)의 경우 휴직 선택권이 매우 드물다”며 “실직을 해 더 나쁜 비정규직에 들어가거나 아픈 게 치유되지 못한 채 계속 일해야 해 결국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로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는) 여러 제도와 사회안전망이 그동안 누구를 보호해 왔는지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승섭 교수는 “과학과 지식은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말해 줄 수 있지만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정치적 용기와 결단, 사회운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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