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 …”

오래전, 비디오 테이프에 나오는 공익광고가 있었다. 호랑이가 아이를 물고 가면서 시작되는 이 광고는 일종의 ‘경고’였다. 한 편의 비디오가 아이들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경고.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는 슬램덩크·취권·사탄의 인형·황비홍을 “요즘 국민학생들이 보는 폭력물”이라고 보도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광고를 떠올리게 된 것은 하나의 기사 때문이다. ‘코로나보다 최저임금 인상이 더 무섭다’(한국경제 6월12자)는 제목이다. 바야흐로 최저임금 시즌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기사다.

지난 11일 최저임금위원회 첫 번째 전원회의가 열렸다. 대략 한 달 동안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 사회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가 진행된다.

매년 그러했듯이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포비아를 확산한다. 최저임금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경고.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것이 최저임금이라는 기사뿐 아니라 사용자단체 부설기관이 뿌려 대는 보도자료를 받아쓴다. 수도권 소재 상경대학 계열 교수 중 무려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최저임금 동결 혹은 인하가 필요하다고 한다.

실제 현장 목소리도 그러할까.

최저임금위가 내놓은 ‘이해관계자 간담회 결과보고서’를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 보고서는 올해 최저임금 협상을 앞두고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각 노사단체와 공익위원과의 간담회 내용을 담았다.

물론 사용자단체는 최저임금 인상을 걱정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들의 ‘공포’는 최저임금(만)이 아니다.

“인건비 상승분이 납품단가나 제품단가에 포함되면 괜찮은데, 납품단가를 그만큼 올려주지도 않는 데다 대기업 등도 비용이 상승하니 오히려 납품단가를 깎는다.”(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파견과 도급 근로자의 인건비 인상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안 그래도 낮은 수수료에서 인건비를 충당하거나 불가피하게 감원을 하기도 한다.”(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배달문화 발달과 코로나19 영향으로 음식 관련 매출에 타격이 크다. 본인 매장인 경우 매출의 70%를 점주가, 30%는 본사가 가져가고 위탁가맹점주인 경우는 본사가 60%, 점주가 40%를 가져가는 구조이므로 최저임금 문제보다 대기업 횡포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낮은 매출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스마트폰 앱에서 과도한 수수료와 과열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직영점에 광고와 쿠폰을 몰아주기 때문에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광고를 할 수밖에 없고, 수수료 문제 역시 심각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수수료로 지급해야 한다.”(대한숙박업중앙회)

보수언론이 최저임금을 ‘공포의 대상’으로 모는 것은 결국 중소·영세 사업장과 자영업자들이 이야기하는 원·하청 문제, 수수료 문제 같은 대기업이 풀어야 할 문제를 애써 외면하기 위함이다. 달은 보지 말고 오직 기사가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라는 얘기다.

그러니 호환·마마·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은 책상에 앉아 고민 없이 쳐 대는 보수언론의 ‘키보드’이며, 쉽게 쓰여진 ‘기사’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무례함을 무릅쓰고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를 빌려 그들에게 전한다.

“창 밖에 저임금 노동자가 속살거려/ 편집국은 남의 나라// 기자란 벅찬 천명을 알기에/ 한 줄 기사를 적어볼까// 불편부당 정론직필 관심 없는 데스크 지시 받아// 노트북을 끼고 늙은 자본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입사 때 기자정신/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기사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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