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변호사라는 직업 특성상 내가 사회를 직접 경험한 시간보다 다른 사람의 입과 귀를 통해 알게 된 세상이 더 크고 넓다. 그동안 상담한 주제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순위를 내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성’ 관련 상담은 단연코 상위권을 차지한다. 특히 직장내 ‘성희롱’ 관련 상담은 내담자의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변수에 따라 상담의 질과 소요시간이 결정되는 민감한 주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2조는 직장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있으나,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해당 법은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형법과 달리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이나 성희롱 발생시 사업주의 조치의무 등을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가 가해자일 경우에만 과태료(1천만원 이하)를 부과하는 규정(남녀고용평등법 39조1항)을 두고 있을 뿐 사업주가 아닌 가해자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와 피해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하는 경우 이를 형사처벌하는 규정(남녀고용평등법 37조2항2호)은 존재하지만, 이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만 성희롱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통신매체를 매개로 행해진 경우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상 통신매체 등 이용 음란죄에 해당해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내지는 성희롱을 넘어서 강제추행이나 강간 등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개인의 성인지감수성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성인지(性認知)감수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는 없으나, 성인지는 양성평등 차원에서 성차별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말하고, 양성평등기본법은 성인지 교육과 예산에 관한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2018년 성희롱이 문제된 사안에서 성희롱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관련 개념을 처음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대법원은 신입사원의 머리카락을 비비며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고 물은 사건에서 위계에 의한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한 광고회사 과장은 평소 성적인 농담과 성희롱 발언을 자주 했다. 피해자인 신입사원에게도 “화장이 마음에 든다” “왜 이렇게 촉촉해”라고 말하거나 성행위를 암시하는 손동작과 음란물을 보여주는 등 지속적인 성희롱을 했다. 과장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신입사원이 거부감을 보이자 신입사원의 머리카락을 비비면서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고 물었다. 위 사안에 대해 1심과 2심은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이 아니라고 봐 무죄판결을 했으나, 지난달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반복된 성희롱은 성적 자유를 침해한, 도덕적 비난을 넘어선 추행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피해자가 처한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무죄 여부를 판단한 것이고, 특히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성희롱 상황에 노출돼 있었던 사정을 피고인의 유무죄 판단에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이지만, 오랜 기간 성희롱에 노출된 피해자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이러한 판결의 취지가 하루빨리 개별 사업장의 문화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세부적인 ‘행위’ 위주로 사안을 평가해 온 나의 ‘성인지감수성’도 되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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