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0대 국회에서 실패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포함해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를 외교부에 의뢰했다. 지난해처럼 비준과 법 개정을 동시에 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노동계와 재계는 각기 다른 이유로 정부 입법예고안에 반발하고 있다. 법 개정 내용뿐 아니라 비준을 위한 방법·절차도 다시 논쟁이 되고 있다. 마침 국회입법조사처도 ILO 기본협약 비준을 21대 국회 주요 입법·정책 현안에 포함했다.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현 정부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인 ILO 기본협약 비준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여야는 ILO 기본협약 비준 책임 있다
강훈중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장

▲ 강훈중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장

정부가 지난달 28일 21대 국회를 겨냥해 입법예고한 노조 관련 3법은 국제노동기준은 물론, 그동안 한국노총이 요구해온 내용에도 한참 못 미치는 매우 실망스런 내용이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정부가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수차례 지적했듯이 △노조의 조합원·임원 자격에 대한 법적 제한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제한 △노조전임자 활동 및 근로시간면제한도에 대한 입법적 개입은 ILO 기본협약에 명백히 위반되는 내용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여당에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가이라이더 ILO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은 더 이상 늑장을 부리지 말고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 처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ILO 결사의자유위원회 권고에 충실한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코로나19 위기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특수고용직, 플랫폼 및 프리랜서 노동자들과,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공립대 조교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또한 노조활동을 옥죄는 타임오프 제도를 폐지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사 자율교섭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야당이라고 해서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를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과거 노태우(1991년 12월 ILO에 가입할 당시)·김영삼(1996년 OECD에 가입할 당시)·이명박(2010년 한·EU FTA 체결시) 정권 때도 국제사회와 약속한 내용이다. 따라서 ILO 기본협약 비준은 여야 모든 정당이 책임감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서두를 때 아냐, 산업에 미칠 영향 면밀히 검토해야
장정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 장정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정부는 21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 등을 입법예고했다.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 필요성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 비준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기본 틀을 바꾸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우리 노사관계와 노동법 제도 전반에 걸쳐 합리적인 개선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힘의 균형이 노조측으로 쏠려 있는 기울어진 노사 지형을 갖고 있다. 사용자는 노조의 파업에 대한 대항권이 미약한 수준이다. 사용자만 일방적으로 처벌하는 부당노동행위 규정으로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대응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입법안대로 해고자·실업자의 기업별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 삭제 같은 법개정이 이뤄진다면 현재도 노조측으로 기울어진 힘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노사관계의 건전한 발전이 저해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ILO 핵심협약 87호와 관련한 해고자·실업자 등의 기업별노조 가입 문제는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사업장 점거 금지와 같이 사용자측의 대항권도 강화하는 법개정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또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은 ILO 핵심협약 98호 2조의 “노사 간 지배·개입행위 방지” 취지에 비춰 보더라도 현행 규정을 유지해야 한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이 심각한 최악의 경영환경에 내몰려 있고,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전문가패널 절차도 중단된 상황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서두르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다. 그러므로 노조법 개정을 서둘러 추진하기보다는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기업의 충분한 의견 수렴도 거쳐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법 개정을 통해 대립적·갈등적인 우리 노사관계를 경쟁력 있는 선진형 노사관계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 개악안 철회하고 협약 비준부터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코로나 19로 인한 고용·생계 위기에 특히 노출돼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 하청·간접고용 노동자가 단결해 스스로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절박하다. ILO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정책 제언으로 “글로벌 위기의 강력한 충격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를 정부 홀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 사회적 대화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는 ...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효과적 인정이라는 ‘권리 행사를 위한 권리(enabling rights)’를 촉진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달 28일자로 입법예고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런 점에서 문제다.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2조 개정은 누락돼 있고, 해고자·실업자가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보장한다지만 오히려 기존에 없던 제약을 추가했다. 직장점거 금지, 단협 유효기간 연장 등을 포함해 효과적인 단체교섭권 행사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다. 협약 비준은 노조할 권리가 제한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서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할 권리 행사를 제약할 목적의 법개정과 병행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ILO도 수차례 조언했듯이 협약을 먼저 비준한 후 ILO 감시감독 메커니즘을 활용해 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을 국회 동의를 거쳐 비준서에 서명해 ILO 사무국에 등록한 후, 1년 동안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된다. 만약 1년 내에 법개정을 완료하지 못하면 협약이 신법 우선 원칙에 따라 개정되지 않은 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기본협약 비준이 정부여당의 방침이라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비준부터 하는 것이 불가능할 리가 없다.

비준 못하면 오롯이 여당 책임, 국회 반드시 마무리해야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을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개정은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이고, 어떤 부분을 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쟁점도 다 나온 상황이다. 이제는 사회적 대화보다는 국회가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 국회 주도로 입장을 조율하고, 조율된 입장을 입법에 반영하는 의제 조정 단계를 밟아야 한다.

공청회를 열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도 좋겠다. 시행 시기 같은 의제는 조정할 여지가 많다. 견해차가 큰 핵심 쟁점도 남아 있다.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쟁점과 핵심적 의제를 구분해서 국회가 논의를 주도·절충을 시도해야 한다.

선비준·후비준을 논란 삼을 단계도 아니다. 법이 개정되면 어떤 식으로든 비준은 당연히 수반된다. 선비준을 말하면 오히려 논의가 길어질 수 있다. 법 처리와 비준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타당하다. 경제계도 무조건 안 된다고 버텨서는 안 된다.

핵심협약 비준동의와 입법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EU FTA를 체결하면서 우리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우리 정부는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노동존중 사회를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집권한 나라에서, 국회도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상황에서 불명예를 안게 생겼다. 법개정을 못 해 이런 오명을 덮어쓴다면 이는 오롯이 여당 책임이다. 여당의 역할이 매우 크다. 특위 구성·공청회 개최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번에는 반드시 마무리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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