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던 김용균의 죽음으로 2018년 12월 국회에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다. 당시 국회와 언론은 김용균법이 통과됐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부끄럽고 참담하게도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새사망률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 노동자 38명이 숨진 한익스프레스 이천물류센터 산재참사와 현대중공업에서 연일 이어진 중대재해 사망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요구가 확산하는 이유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면담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개인의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달리 안전관리체계 미비 등 기업범죄 성격을 가진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에 대한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노동부가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범죄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에는 환영한다. 하지만 현재의 양형기준을 올려 달라는 의견을 제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거나 면피할 수 없다.

작업중지 기준 개악한 노동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겠다”며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같은해 9월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작업중지의 범위·해제 절차 및 심의위원회 운영기준’을 지침으로 시행했다.

해당 지침의 주요 내용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칙적으로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예외적으로 작업중지로 인해 오히려 노동자나 국민의 생명·안전에 중대한 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경우 부분 작업중지 명령을 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이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가 노동자가 운이 없거나 실수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뿐만 아니라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통해서 중대재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자, 기업에는 가장 큰 압박이 됐다.

그러나 노동부는 태안화력 사망사고에서부터 전면 작업중지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지침에 따르면 9~10호기뿐만 아니라 1~8호기까지의 컨베이어벨트 작업도 작업중지 명령을 내려야 했다. 사고원인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서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를 통해 작업재개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 경제라는 미명하에 같은 컨베이어벨트 작업임에도 구동방식이 다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분 작업중지 결정을 했다.

노동부의 이러한 태도와 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노동부는 정부 입법예고안에 해당 지침을 축소하는 의견을 제출했고,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그대로 적용됐다. 결국 중대재해 발생시 부분 작업중지가 원칙이 됐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해당 작업이나 동일한 작업까지 중지하도록 했다. 예외적으로 붕괴·화재폭발 우려가 있는 경우만 전면 작업중지를 하는 것으로 원칙과 예외가 180도 뒤바뀌게 됐다.

현대중공업에서 연이어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된 저변에는 노동부의 작업중지 운영기준 개악과 사고예방 조치 축소 때문이다. 더욱이 일선 관서에서는 축소·개악된 지침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노동자가 사망한 장소·작업으로 한정해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동일·동종작업에 대한 조사나 판단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대재해 개념 확장하고 기업 책임 물어야

산업안전보건법에 중대재해를 별도로 규정하고 처리 절차를 만든 이유는 해당 사고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 기준을 협소하게 판단할 경우 동종·유사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게 돼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최근 노동부는 재해자가 뇌사상태인데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대재해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법령 해석을 축소한 것뿐만 아니라 개정된 지침에는 재해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사망하지 않으면 ‘중대재해’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까지 포함했다.

노동부가 중대재해 개념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이유는 바로 작업중지 명령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친기업적 입장과 태도로는 중대재해 발생을 줄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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