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제철 당진공장 연주공장 내 크레인. 금속노조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20미터 높이 크레인 위에서 크레인 냉각장치 수리작업을 하던 50대 비정규 노동자가 숨졌다. 고인이 작업했던 현장은 섭씨 40도 이상이었지만 20미터 고공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불러온 중대재해”

10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4시27분께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박아무개(53)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다. 고인은 당시 당진공장 연주공장 20미터 이상의 높이 크레인 상부에서 캡쿨러(크레인 운전실 온도를 낮추기 위한 냉방시설) AS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주공장에서는 액체 상태의 쇳물을 네모난 틀에 넣어 고체로 응고하는 공정을 한다. 동료 노동자가 고인을 발견하고 현대제철 사내119로 신고했지만 숨졌다.

노조는 고인이 현대제철 외주업체인 ㅅ사 소속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이 다단계 하청구조에 속한 노동자이거나 ㅅ사에 고용된 일용직 노동자일 가능성도 있다”며 “ㅅ사는 사내하청업체와는 달리 사내에 상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으면서 일정 기간 동안만 계약을 맺고 업무를 하는 외주업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고온 작업 탓”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사고 이후 오후 5시가 넘어 측정한 사고현장 온도가 섭씨 43도였다”며 “고인은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쓰러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작업했기 때문에 한낮에는 측정했을 때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작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연주공장 자체가 고온사업장인데, 작업 현장은 20미터 이상 높이에 있는 크레인 상부로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며 아래쪽보다 온도가 더 상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사고 현장을 확인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도 고인의 사망원인을 ‘탈수’로 추정한다고 노조는 전했다.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이 진행될 예정이다.

“고온작업 노동자 보호조치 이행해야”

노조는 이번 사고를 ‘위험의 외주화’가 불러온 중대재해라고 봤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겪는 탓에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기 힘들다. 안전장치 제공이나 안전수칙 점검·안전교육 대상에서 배제되기도 쉽다, 해당 사업장의 위험업무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제공받기도 쉽지 않다. 2006년부터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중대재해로 숨진 노동자 38명 중 비정규 노동자는 약 30명이다.

실제 고인은 40도 이상의 작업 현장에서 일했음에도 작업 현장에는 별도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더운 열기를 피해 쉬려면 20미터 높이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해 고온의 상부에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온열질환 예방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조 관계자는 “고인은 오후 3시부터 숨지기 전인 4시30분까지 연속작업을 했던 상황”이라며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43도 고온에서 고인이 들고 올라간 작은 생수통 하나만이 고인을 지켜 줄 수 있는 전부였다”고 말했다.

노조는 일일안전작업점검표가 형식적으로 작성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노조에 따르면 점검표에는 고인의 작업명이 실제 진행한 AS 업무가 아닌 크레인 캡쿨러 설치로 표기돼 있었다. 또 작업현장이 고온이었음에도 점검표에는 ‘전도주의·감전주의’만이 표기돼 있었다.

노조 관계자는 “이곳 비정규 노동자들이 ‘작업현장 온도가 섭씨 50도 이상 올라갈 때도 있다’며 대책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안전보건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노동부가 지난 4일 내놓은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노동부에 고인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고인이 고지혈증·고혈압을 비롯한 질병으로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며 사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려 한다”며 “노동부는 사인이 밝혀질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40도가 넘는 현장에서 제대로 마실 물도 없이, 휴식도 취할 수 없이 일한다면 고인이 아닌 누구라도 쓰러지거나 목숨을 잃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며 “노동부는 전국의 고온작업 사업장 노동자 보호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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