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안전공학)

지난 3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반 국민과 관련된 문제는 쉽게 주목을 받지만, 노동안전 문제는 대형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여론 달래기용의 미봉적 대책만 난무하고 근본적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었다.

보편성과 우선순위로 보면 질병관리청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급한 일인데 산업안전보건청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감염은 이따금씩 발생하는 문제지만 노동안전은 매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인 데다가 감염병 문제 이상으로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고 심각한 상태인데도 말이다.

산업안전보건이라는 전문적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선진적인 산업안전보건을 달성하는 데 있어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에는 해당한다. ‘몸으로 때우는’ 산재예방행정이 아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역량 있는 산재예방행정이 되기 위해서는 산재예방행정조직이 인사·조직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반이 외청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이다. 산재예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인리히가 역설한 “산재예방은 과학이자 예술”이라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행정조직부터 전문화해야 한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모델인 법인과실치사법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에서 배울 것은 처벌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행정조직이다.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사망발생률을 보이는 것은 강한 처벌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전문적인 산재예방행정조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안전보건청과 우리나라 산재예방행정기관의 역량을 비교하면 대학생과 초등학생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차가 크다. 영국에서 강한 처벌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것도 전문적 산재예방행정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만큼 산재예방행정조직의 전문성이 약한 사례는 우리가 알 만한 국가 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의 전문성이 민간보다 떨어지다 보니 기업의 안전관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적군에 재래식 무기로 응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보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남이 따라 산재예방행정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행정조직의 인원수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수 대비 산재예방행정 인력 비율로 보면 우리나라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조직적 능력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이 문제다.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과’ 행정구조다. 이를 그대로 두고 현정부 임기 내에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는 가상하기는 하지만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산업안전보건 같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행정에 의한 산재예방 기여도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약한 행정조직에서는 대증요법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고, 소극적인 행정과 ‘선무당이 사람 잡는’ 행정이 될 위험이 상존한다.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비효과적인 조직·인사구조로는 근로감독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도 없다.

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채용·경력관리·교육이 삼위일체로 전문화해야 한다. 이것은 산업안전보건청 같은 조직적 기반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영국·미국·독일(주정부) 등 많은 산재예방선진국이 왜 산업안전보건청과 같은 전문예방조직을 운영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일본 특유의 방법으로 높은 전문성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의 효과적인 안전관리조직을 구축하는 데에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듯, 효과적인 산재예방행정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의 CEO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지혜로운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사망사고 절반 감축 목표가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란만 떨고 정작 실질적 개선은 없었다는 평가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시대적 과제다. 행정조직의 전문화 없이는 산재예방의 선진화를 결코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적인 산업안전보건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억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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