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을 높여 줄 것을 요청했다.
노동자가 숨지는 중대해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서 산재를 예방하자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적이다. 법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법원이 양형을 높이면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노동부 복안이다.
노동부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안한 수위가 현실화하면 효과가 어디까지일까. 다른 대안도 필요한 것일까. 노동계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 봤다. 한국경총에도 의견을 요청했으나 “입장을 밝힐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근본문제 해결 안 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병행해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노동부 장관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기준 조정 요청은 역설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그동안 정부와 법원이 얼마나 무책임했는가를 반증한다. 매년 90% 이상 사업장이 법을 위반하고, 2천400명의 노동자가 사망해도 양형기준은 2016년이 돼서야 정해졌다. 제정된 양형기준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의 치사죄에만 양형기준이 있을 뿐이다. 급박한 위험에 대한 사업주의 작업중지 등 여타의 법 위반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조차 없었던 것이다. 노동부가 주장한 대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독립 범죄군으로 설정해 양형기준이 정해져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구이고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그러나 노동부의 양형기준 개정요구로는 재발방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부도 언급한 대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달리 안전관리 체계 미비 등 기업범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 처벌조항으로는 말단의 관리자나 노동자만 처벌하고 있어 그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것으로만 귀결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기업법인 벌금은 10억원이 상한이다. 재벌 대기업에 10억원 이하 벌금의 상한을 아무리 높인들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때문에 영국·호주·캐나다 등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처벌조항과 더불어 기업살인법을 별도로 제정하고 있다. 기업의 최고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벌금형의 경우에도 매출액 대비 비율로 정하거나 상한이 아예 없는 국가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는 것은 각각의 산재예방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재해유형과 법 준수율은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다.

또한 산재예방을 위해서는 사업장의 예방관리 체제 유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형사처벌이었던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무 등 수많은 법 조항을 과태료로 전환하고, 위탁대행을 허용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의무도 과태료인데다가 운영규정에 대한 감독권을 스스로 폐지한 것이 노동부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 권고한 사고조사 노동자 참여를 퐇팜해 각종 개혁조치를 서랍 속에 묻어 놓고 있는 것도 노동부다. 노동부는 대법원에 양형기준 조정 요구뿐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양형 올려도 처벌강화 안 될 것, 산업안전보건법 뜯어고쳐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노동부 장관이 대법원 양형위원장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졌을 때는 엄벌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면피용 행사다. 이천 화재사고가 났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언론플레이를 선택했다.

처벌을 강화해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실제 처벌로 이어지게 할 수가 없다. 어떤 행위를 하거나 잘못했을 때 법에 따라 처벌한다는 것을 구성 요건이라고 한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구성 요건이 굉장히 느슨하고 모호하게 적시돼 있다. 대기업 대표이사를 처벌할 수 있게끔 구성 요건을 만들지 못했다. 구성 요건이 느슨하면 검찰이나 법원이 강력히 처벌하고 싶어도 못한다. 어떤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으면 처벌받는지 법에 불명확하게 돼 있어 검사·판사가 사건을 받으면 ‘나라도 못 지키겠구나’라고 판단하고 정상참작이라는 이름의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

사건을 받아든 판사는 기업이 법을 준수할 수 있게끔 행정부가 다양한 노력을 했는지도 살핀다. 다양한 노력을 하고, 몇 번의 경고나 지적을 했는데도 무시했다고 하면 사회적 정의감에 따라 판결을 할 것이다. 그런 노력도 없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법에서도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모호하게 규정돼 있으니 엄벌이 가능할 수가 없다.

일선 경찰이나 검찰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자를 기소할 수 있게끔 법을 정교하게 만든 다음에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이 상황에서 양형을 올리는 것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처벌 하한선을 두면 무죄가 많이 나올 수도 있다. 판사가 엄벌은 너무하다고 판단하고 차라리 무죄를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다시 만든다는 각오로 고쳐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안전보건 책임을 물리게끔 법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법에 어떤 맹점과 결함이 있는지, 왜 강한 처벌이 안 이뤄지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근로감독관이 몇 년 새 두 배가량 늘었다. 그런데도 산재예방 효과는 왜 나오지 않을까. 노동부가 정말 많이 고민해야 한다.

양벌기준 변화 없이 양형기준만 강화, 현장관리자만 과잉처벌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

▲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


중대재해기업에 대한 처벌 목적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기업에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있다. 그동안 위험을 제공해 이익을 얻는 사업주와 기업은 미약한 처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전보건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것이 산재로 이어지며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사망 사건에 대한 실형 형량이 6개월~1년이 대부분인 현재 상황에서 노동부가 기업의 적극적인 안전보건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양형위원회에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 강화를 요청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처벌은 사업주나 법인이 아닌 실무관리자에 대한 처벌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양벌기준 변화 없이 양형기준만을 강화한다면 현장의 안전보건을 책임지는 관리자에게만 과잉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반복되는 중대재해 원인은 안전보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주와 법인을 현행보다 강력하게 처벌해 주도적으로 안전보건 활동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양형기준 강화를 포함해 최고경영자 처벌과, 기업의 매출액 일정 범위 내에서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험한 작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수 사망시 형량 높이고, 벌금 기준도 만들어야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이재갑 장관이 대법원 양형 원회에 전달한 의견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을 과실치사상과 별도의 범죄군에서 양형기준을 정하고, 권고형량 범위를 높이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의 ‘의무’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서 노동자가 사망한다면 과실범죄와는 달라야 마땅하다. 다만 보완할 것이 있다.

첫째로 형벌의 응보적 기능을 생각하면, 다수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형량을 산술적으로 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양벌규정상 법인인 사업주는 벌금만 받게 돼 있으므로 벌금에 관해서도 양형기준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현행 양형규정상 벌금에 관한 기준은 다른 법에도 없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사망사고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벌금기준을 신설할 때가 됐다.

양형과 별개로 고민해야 할 것도 있다. 첫째 과징금 부과기준을 높여야 한다. 현행법은 업무정지를 대신해서 10억원 한도에서 과징금을 부과한다. 연 매출액이 100억원인 경우 30일 영업정지를 받더라도 과징금은 8천200만원에 불과하다. 둘째 경총측 의견에 따르면 2017~2018년 동안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질 경우 평균 중지기간이 21일, 기업의 피해금액이 600억~1천200억원이라고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벌금이나 과징금보다도 노동부가 작업중지명령을 정확하게 내리고, 재발방지대책이 완전히 세워졌을 때 해제명령을 내리는 것이 기업에게는 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으로 개악된 작업중지명령 범위를 넓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내용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개악된 것을 정상화시키라는 요구다. 개악 이전에는 유사한 작업, 사업장 전체도 작업중지명령이 가능했다. 사망사고가 난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추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전면 작업중지가 오히려 더 위험할 경우에 부분 작업중지를 했다. 그러나 개악된 현행 법은 사고가 난 당해작업, 당해작업과 동일한 작업만 작업중지 대상이라고 정했다. 예외적으로 당해 작업과 동일한 작업만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게 됐다. 유사한 작업 중지나 전면 작업중지는 아예 사라졌다. 노동부가 정말로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싶다면 양형기준 상승과 작업중지명령 범위를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법부에만 미룰 일은 아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