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사용자들이 파견·용역·위탁 같은 간접고용 형태를 통해 얻는 ‘이윤’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인권’은 양립 가능한가.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하다고 본다. 기업친화적 정책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인권위는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인권위는 2009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내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 당사자뿐만 아니라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개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1월에도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간접고용이 확산하면서 위험의 외주화와 노동기본권이 제약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인 노동인권 증진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가 정부에 권고한 핵심 내용 중 하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내세운 정부도 기업친화적 정부와 마찬가지로 사용자들의 책임회피를 방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권한과 정책적 수단·자원을 활용해 자신이 2017년 대선에서 공약했던 ‘대기업·공공부문의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에 대한 원청기업의 공동사용자 책임’을 제도화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 단지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잠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바마 행정부는 연방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때문에 노동자들의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게 되자 유례없이 많은 행정명령을 내렸다. 연방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 권리보장 수준을 높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연방노사관계위원회(NLRB)가 공동사용자성의 기준을 변경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확대한 것도 매우 중요한 성과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NLRB는 5명의 위원 중 3명이 민주당 성향으로 채워지자, 기존 레이건 정부하에서 정해졌던 사용자성에 대한 엄격한 기준(티엘아이·래르코 사건, 1984)을 변경했다. NLRB는 2015년 ‘브라우닝-페리스’ 사건에서 핵심적인 고용조건에 대해 사용자가 충분한 지휘·통제권을 행사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직접적·즉각적인 지휘·통제권 행사뿐만 아니라 지휘·통제권을 행사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고려될 수 있고, 직접적인 지휘·통제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지휘·통제도 고려될 수 있다고 봤다.

이 같은 결정이 나오자 미국의 대기업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트럼프 정부의 NLRB는 위원의 다수가 친공화당 성향으로 바뀌자 위 결정을 뒤집는 결정을 했다(하이브랜드 사건, 2017). 이것이 절차적 문제로 폐기되자 올해 2월26일에는 ‘연방노사관계법 공동사용자 규정’을 제정해 직접적·즉각적인 지휘통제권을 행사해야 공동사용자로 인정되도록 했다.

신자유주의를 확대했던 레이건은 공동사용자 기준을 엄격하게 해 노조할 권리를 축소시켰다. 교섭력 확대를 통해 불평등을 축소시키고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오바마는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다. 오바마의 노동정책에 불만을 터뜨린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트럼프는 오바마의 유산을 하나하나 되돌리고 있다.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자신들이 가진 권한과 정책적 수단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바마 정부의 NLRB가 ‘브라우닝-페리스’ 사건에서 한 결정의 핵심은 법리가 아니라 정책적 전환과 관련한 태도였다. NLRB는 미국의 비정규직 현실을 설명하면서 ‘단체교섭 실시와 절차 촉진’이라는 연방노사관계법(NLRA) 입법목적에 충실하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새로운 결정으로 그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했는데, 이러한 정책적 전환이야말로 권한을 가진 정부가 보여줘야 할 자세였다.

지난 20일 공공부문 민간위탁·금속노조 사업장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공기관·지자체·대기업을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다. 지금까지 노동위는 묵시적·명시적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면 노조법상 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며 조정을 하지 않았다. 현실과 괴리된 입장과 태도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외치는 정부에서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조정위원들은 낡은 매뉴얼에 얽매이지 말고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고민하면 된다. 선례가 없어 힘들다면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헌법이 노동 3권을 보장한 이유와 국제노동기구(ILO)·인권위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거듭 권고는 이유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된다.

문재인 정부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노동위에서 조정 대상이라고 인정한다면 즉각 노동부와 노동위 업무매뉴얼과 지침 등을 변경하고 노조법 개정 절차에 들어가면 된다. 조정위원들이 끝내 전환을 주저한다면 즉각 낡은 법 해석에 머물러 있는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노조법 개정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노동존중 정부가 기업친화적 정부와 다르지 않다면, 그 노동존중은 기업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뤄지는 소소한 존중 또는 시혜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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