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고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를 자주 듣는다. 노래 제목도 그러하지만 “내게로 와 줘”라는 가사가 코로나19 시대에 더 와닿았다(물론 노래에서 와 달라고 하는 대상은 ‘일상’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 음료 광고는 이 노래를 배경으로 ‘일상’을 얘기한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거나 듣는다. 날이 더워져 반팔·반바지 같은 여름옷을 입은 사람들의 얼굴에 씌워진 마스크가 더욱 생경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일상’을 얘기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가까이 앉아 얘기하고 영화도 보면서 일상을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생각과 바람이 실로 한가한 것이었음을 쿠팡 부천물류센터를 덮친 코로나19 집단감염 소식을 들으면서 깨닫게 됐다.

<매일노동뉴스> 5월29일자 기사를 보자.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는 얘기한다.

“통상 한 시간 동안 100개의 상품을 담아야 한다. 그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 관리자가 주의를 줘 뛰듯이 일할 수밖에 없다.”

9시간 근무 중 한 시간의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휴대전화를 만질 수도 화장실 가기도 어렵다. 자리를 비우면 방송으로 이름을 호명하는데 일용직 노동자는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로 부른다.

부천물류센터의 70%는 일용직 노동자다.

이들의 노동환경, 일상은 코로나19 이전과 현재 모두 똑같다.

지난 3월 발생한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도 마찬가지다.

너비 1미터가 되지 않는 책상에는 컴퓨터와 전화기만 놓을 수밖에 없다. 휴게시간이 보장돼 있지 않고 사업장 내 전자감시는 일상화돼 있다. 콜센터 노동자 대부분이 파견·도급을 포함한 비정규직이다.

노동자 집단감염은 누군가 클럽을 갔거나, 특정 종교를 가져서가 아니다.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다.

이들뿐이겠는가. 4년 전 구의역 김군도, 2년 전 태안 화력발전소의 김용균씨도 이런 노동조건이, 이를 방치한 사회가 만든 희생자다.

‘터질 게 터졌다’는 사건 사고가 났을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언론기사 제목이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터질 것’들은 우리 주위 곳곳에 있다. 우리는 파국을 맞이하고 나서야 “터졌다”고 얘기한다. 소 잃은 뒤에 외양간은 잊힌다.

그러니 터질 것들 속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돌아가고 싶지도 유지하고 싶지도 않은 현실이다.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4월 생활 속 거리 두기 기본지침을 발표했다. 아프면 쉬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쉼’이 생계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마땅히 그러하다.

하지만 ‘기본’지침을 지킬 수 있을 만한 노동환경의 ‘기본’은 대다수 노동자들과 거리가 멀다. 많은 노동자들은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생활이 ‘생계’를 위한 노동과 거리를 두기에는 너무 팍팍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사는 것을 일상이라 부른다면 ‘잘’ 사는 것은 어떤 일상일까.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고민과 과제는 여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