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선묵 공인노무사(부천시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상담실장)

지난해 상담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부천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였습니다. 그 노동자는 경비용역업체에 소속돼 일을 하고 있는데, 용역업체에서 임금을 계속 지급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하루빨리 노동청에 진정을 하시라고 권유했더니, 아직 임금 지급일로부터 14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4일 이내 지급’ 규정은 사업에서 퇴사한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규정으로, 재직 중인 노동자의 경우 임금 지급일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임금체불에 해당하기 때문에 바로 진정이 가능하다고 안내했습니다.

그 노동자의 이어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현재 자신이 일하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경비업체에 용역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경비업체에서 임금을 제대로 주고 있지 않으니, 경비업체를 거치지 않고 입주자대표회의에 직접 임금에 해당하는 금품을 달라고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수급인 소속 노동자가 도급인에게 직접 임금을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설업의 경우 과거부터 복잡한 도급구조가 만연했고, 그에 따라 각종 도급 단계의 맨 마지막 수급인에 속한 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이에 따라 2007년 근로기준법에는 건설업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건설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사업주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자신들의 직상수급인에게 임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했습니다(44조의3 1항·2항).

그리고 직상수급인이 하수급인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한 경우, 직상수급인이 수급인에게 지급해야 할 하도급 대금 채무는 그 범위에서 소멸하게 했습니다(44조의3 3항).

그런데 이러한 특례는 건설업에만 적용될 뿐입니다. 다른 업종은 직상수급인이 수급인에게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처럼 책임 있는 사유가 없는 이상 수급인 노동자가 직상수급인이나 도급인에게 임금을 직접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규정이 아직 없습니다.

수급인이 동의한다면 직상수급인이나 도급인이 수급인의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수급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직상수급인이나 도급인이 수급인의 노동자에게 임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수급인에게 지급해야 할 하도급 대금이 그 부분만큼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급인 노동자에게 지급한 임금 상당액의 구상채권을 취득할 뿐이라는 것이 판례입니다.

그러나 전화를 한 노동자 상황과 같이 현재 수급인이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임금을 체불하고 있고 앞으로도 체불할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상태에서, 도급인이나 직상수급인이 수급인에게만 대금을 줘야 한다는 것은 임금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건설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직상수급인, 그리고 특히 도급인에게 임금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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