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청계천에서 일어난 분신으로 주인을 잃고, 날아가던 불씨를 통해 생명력을 얻은 청계천 출신 노동히어로 ‘민총이’.
패션에 관심이 많고, 소주와 홈런볼을 좋아하는 민총이는 대한민국 모든 집회에 참석해 다양한 노조 전략과 기술을 학습해 16가지 변신 능력을 갖추게 되는데….(민총이 캐릭터 설명 중)

민주노총 캐릭터 ‘민총이’가 태어나자마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창립 25주년을 맞아 민주노총 이미지 개선·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홍보를 위해 제작됐지만, 민총이란 이름의 적절성과 캐릭터 자체의 심미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면서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하지만 6년 전 학생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카이스트(KAIST) 캐릭터 ‘카이’가 구성원들과 네티즌들의 애정 어린 ‘착즙’ ‘심폐소생’에 힘입어 ‘넙죽이’로 재탄생, 카이스트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있듯 민총이를 심폐소생하자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실제 트위터를 중심으로 “보다 보면 귀엽다”거나 “계속 보니 정이 들었다”처럼 민총이에 우호적인 반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민총이’도 ‘넙죽이’처럼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까.

‘민노총 트라우마’ 건드린 작명에 와글와글

지난달 1일 민주노총 캐릭터 민총이가 온라인에 공개됐다. 자신을 “민주노총 온라인 조합원 1호”라고 소개하며 등장한 민총이에게, 정작 민주노총 간부·활동가들이 보인 반응은 냉담했다.

민주노총은 “청계천에서 일어난 분신으로 주인을 잃고, 날아가던 불씨를 통해 우연히 생명력을 얻었다”는 탄생 비화를 통해 민총이가 전태일 열사의 DNA를 가진 캐릭터라는 점을 어필했지만, ‘민노총’을 연상시키는 이름과 심미적인 측면에서 ‘촌스럽다’는 다양한 불만이 쏟아졌다.

주된 비판 대상은 이름이다. 민총이가 조선·중앙·동아 등 일부 보수언론과 보수 정치인들이 민주노총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인 ‘민노총’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A산별노조 관계자는 “보수언론이 악의적으로 민노총이라고 쓰는 상황에서 캐릭터 이름을 굳이 민총이로 해야 했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이 나서서 ‘자살골’을 넣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B산별노조 관계자는 “민노총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 아니겠냐”며 “민총이가 민노총에서 파생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작명에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노조 조합원 김서연(가명)씨는 “민노총이 연상되지는 않지만, 백지 위에 ‘민주노총’을 써 놓고, ‘그냥 민총이로 할까’ 해서 지은 이름 같다”고 혹평했다.

물론 옹호론도 있다. 민총이가 ‘민주노총’이라는 원 소스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겠냐는 것이다. C산별노조 선전홍보 담당자는 “민주노총을 상징해 부를 만한 이름이 노동이, 민주, 노총이 밖에 더 있겠냐. KCTU(민주노총 영문 약자) 가지고 만들기도 어렵다”며 “솔직히 ‘태일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상 이름을 무엇으로 짓든 어색하고 욕먹을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름 논란에 대해 D산별 서울지부 관계자는 “조합원이나 일반인 대상으로 캐릭터 이름을 공모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민주노총

폭탄이 아니라 조끼라고?

캐릭터 모양을 두고도 옥신각신한다. 코발트 블루에 가까운 짙은 파란색 동그란 몸통에 정수리에는 불꽃을 단 민총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첫 반응은 ‘으잉?’이었다. 보통 캐릭터나 마스코트는 그 단체를 상징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동그란 모양의 민총이가 민주노총의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폭탄 같다”거나 “앵그리버드 같다”는 평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모티콘으로 민총이를 접했다는 대학생 윤지수(가명)씨는 “민총이라서 ‘총알’을 형상화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유튜브에 공개한 1분30초가량의 ‘민총이의 탄생’ 영상에 따르면 민총이는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투쟁 조끼’를 형상화한 것이다.

여러 행성(지역)에서 사장들에게 혹사를 당하는 ‘도구들’(노동자들)이 서로를 보호할 최강의 방패 ‘민주머니’(노조)를 만들었고, 사장들의 총공격에 맞서 모든 민주머니들을 결집할 도구 ‘조끼(민총이)’를 찾아냈다는 것.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럴듯한 세계관이지만, “주머니들을 하나로 묶어줄 든든한 ‘빽판’ 민총이가 탄생했다”는 마지막 설명까지 듣고 나서야 민총이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만든 건 아쉬운 지점이다.

최신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임개발 기획자이기도 한 차상준 화섬식품노조 스마일게이트지회장은 올해 2월 공개된 민주노총 소개 영상 가운데 게임을 빗대 민주노총을 소개한 ‘파란만장 회사생활’을 언급했다. 차 지회장은 “8비트 레트로 게임 같은 영상에 나온 민총이는 너무 귀여웠는데, 정식 캐릭터가 되면서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달 1일 대중에 공개된 직후 다양한 불만과 혹평에 놀란 민주노총은 민총이 관련 홍보를 보류했다. 캐릭터 사업을 총괄한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은 기관지 <노동과세계>의 민총이 인터뷰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날 현재까지 공식적인 대외홍보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나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반응을 살피고, 산하 조직들에서 의견수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총이에게서 넙죽이의 향기가?

최근 민총이를 둘러싼 논란은 여러모로 2014년 카이스트 캐릭터 ‘넙죽이(본명 카이)’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카이스트는 UI 변경사업 일환으로 1억5천여만원을 들여 로고와 심벌·캐릭터를 재정비했다. 이 중 단연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옆으로 길게 늘어난 파란색 얼굴과 몸통을 가진 캐릭터 ‘카이’였다. 좋게 말하면 낯설고, 솔직하게 말하면 괴상한 외계생명체 모습에 카이스트 학생들은 경악했다. 특히 “캐릭터 제작에만 1억5천만원을 썼다”는 뜬소문이 퍼지면서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학생들은 카이라는 이름 대신 ‘넙죽이’ ‘반달돌칼몬’이라고 놀리며 각종 패러디물을 양산했고, 결국 카이는 등장 7일 만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욕하면서 정든다는 말처럼 단순하기 그지없는 넙죽이의 매력에 빠진 학생들이 “볼수록 귀엽다”며 넙죽이 심폐소생에 나섰고, 결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넙죽이 팬아트(Fan art·팬이 원작을 두고 만들어 내는 2차 창작물) 등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카이스트 정식 캐릭터로 정착했다. 현재 카이스트 홈페이지에도 카이라는 이름 대신 넙죽이로 소개되고 있다.

넙죽이 사건을 기억하는 트위터 사용자들은 조롱인듯 아닌듯 “민총이도 제2의 넙죽이로 만들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실제 한 트위터 사용자(@Co****)는 “카이스트 마스코트도 착즙해서 살렸는데 민총이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 “좌파미감은 너무 구려서 오히려 힙해진다”(@rr****)는 조롱 섞인 감상평도 있지만 “솔직히 민총이 귀엽지 않음?”(@Su****), “민총이 나름 귀여운데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Fd****), “민총이보다 잘생긴 자만 돌을 던져라”(@FR****) 같은 의견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넙죽이가 팬아트로 재생산됐듯 “민주노총에서 전국 민총이 그리기 대회”를 하자(@tm****)거나 “천하제일 민총이 그리기 대회 열자”(@me****) 같은 트윗도 여럿 보인다. 민총이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넙죽이처럼 ‘욕하면서 정붙이는’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민총이 심폐소생’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캐릭터 개발비가 300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짠내 나는 민총이’라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장은 “이름이나 캐릭터 색깔 등 여러 면에서 아쉬운 지점은 많다”면서도 “민주노총 현 (예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캐릭터라면 ‘우리 사정 때문에 안타깝게 탄생한 아이를 살려 보자’는 캠페인을 해 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기주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장은 “민주노총 캐릭터에 대한 의견수렴을 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 있다”며 “현장에서 민주노총 캐릭터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트위터 카이스트 캐릭터 계정 갈무리

“실패 두려워하지 않아야 발전한다”

민총이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응원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C산별노조 선전홍보 담당자는 “주먹 쥔 팔뚝이나 깃발 이미지를 계속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쓰는 건 무리가 있지 않냐”며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진 대중이나 노동자들의 시선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왕에 시작한 만큼 갈팡질팡하지 말고 꾸준히 잘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주문했다.

차상준 스마일게이트지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야 양질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캐릭터 상품 만드는 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계속 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이 실패를 두려워 말고 끊임없이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같은 캐릭터가 나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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