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자동차산업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셧다운과 록다운이 이뤄지면서 전 세계 유수 자동차 업체들도 생산·판매 하락, 수출 절벽, 유동성 위기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수(55·사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지금이 오히려 현대차가 도약할 기회라고 얘기한다. 노동운동에서 얘기하기를 꺼리던 ‘생산성 향상’ 같은 파격적인 제안도 내놓았다.

지난해 말 ‘사회적 조합주의’를 내걸고 당선한 이 지부장은 그간 임금인상에 집중하는 노동운동 방향에서 탈피하고, 협력적 노사관계 속 생산성과 품질 향상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생산성·품질 향상은 코로나19 위기와 자동차산업 대전환기에 조합원 고용안정을 위한 지부의 핵심 전략이다.

지난 19일 오후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상수 지부장은 올해 임금교섭에서 조합원 고용안정을 위한 견고한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 해외 공장 중 적자가 나는 공장을 국내로 들여와야 전기차 전환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를 다시 메울 수 있다는 게 이 지부장 생각이다.

그러면서 회사측에도 적극적으로 논의에 임해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묻고 싶다. 나는 충분히 준비돼 있는데 회사는 준비가 됐는가.”

“회사는 고용보장, 노조는 생산성·품질 향상”

-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셧다운한 속에서도 현대차는 풀가동했다. 지금이 현대차의 제2 도약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역대 어느 집행부도 하지 않았던 생산성 향상, 품질 향상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위험해 보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조합원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98년 외환위기 때 36일간 파업하고 56일간 천막농성을 했지만 처절하게 깨졌다. 그때 내가 위원장(지부장)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량 확보, 생산 증대를 통해 현대차가 발전하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 또한 따라온다고 본다. 과거 고용을 지키는 방식은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머리띠 매고 싸우는 거였잖나. 앞으로는 노사가 서로 믿지 못하고 소통이 부족해 벌어지는 투쟁지향적·대립적 노사관계에서 탈피해야 한다. 노조는 조합원 고용을 지키는 방식에서 변화를 만들 테니, 회사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 속에서 노사가 함께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키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 노조가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해 경쟁력을 강화하면, 회사는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인가.
“현대차는 매년 품질개선금에 3조원씩 쏟아붓는다.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비용이 그 속에 포함돼 있을 거다. 그래서 앞으로 맨아워(1명이 1시간 동안 하는 작업량) 협상을 할 때 대의원·부서장들과 품질 협상도 같이 할 생각이다. 우리가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할 테니, 회사는 줄어든 품질개선금의 일부를 조합원들에게 되돌려 주자는 것이다. 처음 시도해 보는 방식이다. 앞으로는 회사가 영업활동과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금을 가지고 우리가 투쟁해 임금을 인상하고, 성과금을 받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 현장에서는 공감대가 있나.
“현장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결과를 내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선 시행, 후 보완 방식으로 조합원들에게 양해를 구할 거다.”

- 임금교섭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교섭 전략은.
“임금·복지·성과금은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교섭 방침이자 활동이다. 30년 전부터 해 오던 걸 굳이 내세워 ‘올해 임금을 인상하겠다, 성과금을 많이 받겠다’고 하는 것은 구태다. 고용안정에 대한 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올해 교섭 전략의 가장 첫 머리에 놓일 것이다.”

“현대차 갑질에 우는 부품사 어려움 살피겠다”

- 구체적인 복안이 있나.
“해외 적자 공장을 부여잡고 있지 말고 폐쇄한 후 국내 공장으로 유턴시키는 방안이다. 자동차시장 변화에 따른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적자를 보고 있는 해외 공장을 국내로 가지고 오면 조합원 고용도 보장하고, 청년실업률도 줄일 수 있다. 현대차가 ‘2025 전략’을 통해 굴뚝산업에서 모빌리티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굴뚝산업 종사자들을 드론·로봇 만드는 곳에 배치하면 적응하기가 힘들 거다. 그 자리에는 그 분야를 전공한 청년들을 신규채용하면 된다. 해외 공장을 유턴시켜 그 자리에 굴뚝산업 종사자들을 배치하면 일자리 창출도 하고 고용도 유지할 수 있다.”

- 해외 공장 유턴을 회사가 받아들일까.
“회사가 2025 전략을 확정하고 추진할 때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내용이 아니면 고용보장을 위해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이 있을 거다. 회사가 더 큰 사업을 진행하는데 노조 동의가 필요한 부분은 해외 공장 유턴과 맞바꾸자고 제안할 거다.”
 

- 또 다른 교섭 전략은.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울산시민과 국민을 위해 현대차지부의 위치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도 이번 교섭의 핵심 기조로 잡았다. 그간 현대차지부의 수많은 정당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배부른 집단, 귀족노조, 황제노조로 불리더라. 억울하지만 어쩌겠나. 이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하부영 전 지부장이 얘기한 ‘하후상박(연대임금)’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거다. 완성차가 나서서 현대차 부품사, 지역 부품사들의 어려운 점을 같이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취약계층에 있는 약자들을 위해 대공장노조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걸 찾을 거다.”

이 지부장은 최근 울산1공장에 직서열(실시간 납품)하는 전장품 모듈업체인 덕양산업 노조(금속노조 덕양산업지회) 집행부와 간담회를 한 내용을 전했다.

직서열 업체인 덕양산업은 현대차와 발맞춰 모듈 생산을 해야 한다. 제 시간에 납품하지 않으면 현대차 공장 라인도 멈추게 된다. 한데 연습용 부품 부족으로 덕양산업 노동자들이 조립연습을 제대로 못해 납품 물량을 못 맞추는 일이 잦았다. 이 지부장은 “현대차에 도움을 요청하면 현대차는 ‘너희 문제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대했다더라”며 “그러면서도 완성차 가동률이 떨어지면, 떨어진 가동률만큼 덕양산업에 클레임을 걸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제때 납품 못한) 덕양산업의 잘못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대차가 조금만 신경을 써 줘도 막을 수 있는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작은 것부터 현대차가 신경 쓰지 않고 책임만 부품사에 떠넘기면 부품사 노동자들은 현대차를 악덕기업으로 본다. 현대차지부에 대해서도 ‘자기들끼리 배부른 투쟁을 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보고 있더라. 간담회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챙겨 보겠다고 했다. 이번 임금협상에선 이런 문제들까지 바로잡겠다.”

- 시니어촉탁직 폐지와 정년연장을 공약했는데.
“올해는 촉탁계약직이 자기 자리에서 일하게 하는 게 계획이다. 시니어촉탁직은 어디서 일할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정년을 2·3년 앞둔 조합원들은 ‘정년연장이 안 되면 내가 일하던 원래 자리에서라도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기 자리에서 일하면 부족하게나마 정년연장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걸 별도 요구안 1번으로 가져가고, 내년에는 시니어촉탁 폐지와 정년연장을 요구할 계획이다.”

- 회사는 부정적일 듯싶다.
“시니어촉탁이 되면 연봉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정규직 1년차 임금과 같아진다. 회사가 이 맛을 한번 봤기 때문에 시니어촉탁직 폐지를 안 하려 할 공산이 크다. 노동 3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그때는 또 노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다.”

▲ 정기훈 기자


“총고용 보장-임금인상 자제, 사회적 대타협 해야”

- 국무총리 주도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시작했다.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
“노동자들이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면, 자본과 정부는 임금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하지 않겠나. 이 두 가지를 같이 터 놓고 이야기하게 될 텐데, 양측 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어쩔 수 없는 재난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이 상시적 고용불안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정부도, 경총도, 민주노총도 딱히 대안이 없다.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 필요가 있다.”

- 임금인상 자제 얘기부터 나오면 노동계가 반발하지 않겠나.
“대한민국 각 정파 이해관계 속에서 입장이 다 다르게 나올 거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가 폭락하고 난 뒤에 우리가 주장하는 운동철학이나 사상을 가지고 국민과 노동자 전체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결론은 나와 있다. 이해 못한다. 양보교섭을 하자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재난이 왔을 때는 상황에 맞는 판단 기준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 코로나19 극복을 이유로 노동유연화를 요구하는 재계 요구도 높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기간을 정한 노동유연성은 우리가 좀 풀어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무한정 (노동유연화로) 가는 방식은 노동계 동의를 구하긴 힘들지만, 기간을 정하고 한시적이라면 해야 한다고 본다.”

- 현대차에서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풀어 특별연장근로를 하려고 했는데.
“부품사 재고 문제 때문이었다. 우리는 주 52시간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300명 미만 부품사는 주 52시간이 1년 유예됐기 때문에, 주 60~70시간을 일하고 있다. 완성차가 코로나19 때문에 단축조업을 하니까 부품사는 재고가 팽창했다. 이대로 가면 3·4차 업체는 재고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제 예외가 허용되면 1주 최장 12시간 초과연장근로를 연간 90일까지 허용받을 수 있는데, 다만 한 달이라도 해 볼 생각이 있었다. 어느 정도 재고가 해소되면 다시 정상근무로 돌리면 되는 거니까. 결국 해외 공장이 셧다운되는 바람에 하지는 못했다.”

“전기차 시대, 부품사 문제 논의할
울산 자동차노동포럼 만들자”


- 코로나19에 따른 부품사 고용불안도 심각한데.
“사실 완성차 공장은 코로나19로 발생하는 상시적 고용불안에 많이 노출돼 있지는 않다. 부품사, 특히 3·4차 업체들에서 고용불안이 훨씬 심각하다. 부품사 사장들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도 받는다. 술 한잔 하고 울면서 전화하는 분도 있다.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울산시, 노동부, 부품사, 재계, 민주노총 울산본부,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차 노사가 참여하는 가칭 ‘울산 자동차노동포럼’을 제안했다. 전기차를 포함해 4차 산업 확대에 따른 부품사 문제를 파악한 후 대책을 수립하자는 취지다.”

- 핵심은 현대차 사측이다. 포럼에 참여하리라고 보나.
“오늘 고용안정위원회 노사공동자문위원회 위촉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하언태 사장에게 ‘나오시겠냐’고 물었다. 울산경제가 침체되고 있고, 전기차 시대로 전환됐을 때 부품사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으니 이런 문제들을 다뤄 보자, 나와 달라고 했다. ‘고민해 보겠다’고 하더라.”

- 울산1공장에서 내년부터 차세대 전기차(NE)가 생산된다. 전기차 전용라인이 만들어지면 필요 인력의 20~40%가 줄어든다는 예측이 있다. 전기차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맨아워 협상에서 갈등이 예상되는데.
“NE뿐만 아니라 수소차도 들어간다. 기존 내연기관차 작업 공수를 100이라고 보면 전기차·수소차 작업 공수가 60에서 70까지 줄어드는 건 기정사실이다. 1공장 내 넘버2라인에 전기차가 들어간다. 1공장 조합원 3천500명 중 넘버2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절반가량 있다. 전기차가 들어가면 넘버2라인의 300명 정도를 다른 공정으로 전환배치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다행히 전임 하부영 집행부가 회사와 합의한 5030 합의서에는 정년퇴직자 자리의 공정은 지부 집행부가 직접 관리하도록 해 놓아 사업부에서 임의로 촉탁계약직을 쓸 수 없다. 그런 공정에 선순환 구조로 전환배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NE 맨아워 협상 결론이 나는 시점은 연말께가 될 것이다.”

-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하언태 사장과의 3자 회담을 제안했다. 3자 회담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가.
“울산에 자동차 랜드마크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울산이 이제 공업도시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랜드마크 자체를 울산의 대표적 건축물로 만들고 싶다. 랜드마크 안에 연구센터를 만들어 새로 개발된 자동차 부품들이 울산지역에서 상용화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노조가 종잣돈을 낼 테니 회사도 함께하자고 제안할 거다. 울산시도 긍정적이고, 각 지자체들도 서로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하더라. 이런 큰 사업들이 속도를 내려면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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