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날은 슬픈 사건에서 유래했다. 1993년 태국에 미국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주인공, 바트 심슨 인형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18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이유는 노동자가 인형을 훔치는 것을 방지한다며 공장 문을 밖에서 잠궜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에는 인형으로 벌어들일 수익이 노동자 생명보다 높은 가치였다.

지난달 29일 발생하지 않았어야 할 비참하고 참담한 사고가 일어났다. 경기도 이천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0여명이 다쳤다. 단순히 운이 없어서, 혹은 실수로 발생한 사고로 치부할 수 있을까.

사고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회

이번 사고는 40여명이 숨졌던 2008년 1월 코리아2000 냉동창고 사고와 데자뷔가 될 정도로 판박이였다. 이 당시에도 언론과 정치권은 방지대책으로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없애고, 동시작업을 금지하는 한편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법과 제도는 무용지물로 전락해 2008년 사고와 같은 참사가 다시금 반복됐다.

왜 우리 사회는 2008년 사고에서 배우지 못했을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발생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이 담긴 사고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해당 보고서는 중대재해 수사자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고, 캐비닛 한편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과거 사고에서 배우기 위한 첫발을 내딛기도 어려운 구조다. 사고 원인과 재발방지를 위한 보고서는 많은 이들에게 공개하고 알려야 한다.

노동부는 올해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도 개편안을 만들고, ‘위험 발견 즉시 개선’을 하도록 산업안전보건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냉동·물류창고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노동부 대책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기존 법·제도 안에 있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52조1항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2조4항은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할 수 없다며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회사의 손해해상 청구와 징계를 우려해 작업중지권을 권리로서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이 법전에서 머물고 실제 필요한 현장에서 발현되지 못하는 이유를 검토해야 한다. 권리행사를 막고 있는 장벽을 없애야 온전히 중대재해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과 동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부는 1995년 위험상황 신고제도를 도입했고, 2001년부터 신고전화번호(1588-3088)를 일원화해 운영하면서 위험상황신고 처리지침을 만들었다. 해당 제도는 산재발생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가 신고하면 감독관이 현장에 출동해 확인·점검하고 조치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제도 홍보는 거의 없다. 더욱이 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실제 운영상황은 좋지 않다. 24시간 운영하는 위험상황 신고전화는 저녁이 되면 연결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연결이 되더라도 바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과 제도가 있어도 무용지물로 전락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후진적인 재난사고를 막고 노동자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노동부 담당부서를 청으로 승격하고 재원과 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업·경제중심 사회구조 변해야

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을 경영을 규제하는 족쇄로 인식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이로 인한 중대재해는 기업의 이윤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산물로 여기고 있다. 또한 정부와 사법부는 법 위반에 대해 다른 법률보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는데 어느 기업이 안전보건 의무를 준수하겠는가.

단순 고용관계에 따른 법적 의무만으로 중대재해 발생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원청과 발주처, 그리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기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사회적 운동으로 확장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 대성공과 후진적 산재사망 사고 반복이라는 극적인 대비는 왜 발생하는가. 기술과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어디에 중심을 두고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라도 비정상적인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활동과 대응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