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4·15 총선 전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가구소득 하위 70%까지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타당하다는 둥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둥 갑론을박이 있었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득별로 하위는 더 많이 지급하고 상위는 더 적게 지급하는 하후상박 차등지급이 어떨까,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드러내지 않았다. 긴급재난 일회성 지원금에 하후상박 누진적용을 굳이 고집하며 의견을 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때 나는 다른 지점에 꽂혀 있었다. 하위 70%까지 지급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상위 30%는 못 받는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30%에 관심이 있었다.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것이 쓰리겠지만, 자신보다 못한 형편의 사람이 무려 70%나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보다 못한 형편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또 생각했다.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사람, 즉 상위 30%에는 노동자, 그중에도 노조 조합원 상당수가 포함될 것이라 계산했다. 4인 가구 기준 소득 상위 30%의 경계선은 대략 월 713만원이다. 연 소득은 8천556만원이다. 노동자 가구에도 많다. 다른 가족 소득까지 덧셈할 필요도 없이 혼자만으로도 그 이상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가 상당수 있다. 그들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면서, 이 사회에서 자신의 처지가 나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기 바랐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계층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밑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이, 특히 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노조들이 자신의 임금에만 매달리지 않고, 어려운 처지로 살아가는 노조 바깥의 노동자들과 손잡는 하후상박 임금연대·고용연대의 사회연대전략에 나서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총선이 끝난 뒤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상위 30% 가구가 자신의 나은 형편을 깨달을 기회가 사라졌다. 노동자라고 해서 다 밑바닥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기회가 사라졌다. 조합원 상당수가 상위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확인할 기회가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랬는데 얘기를 들어 보니 총선 전에 많은 사람이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계산해 봤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가구가 하위 70%에 속하는지 상위 30%에 속하는지 확인했다고 했다. 노조들과 조합원들도 계산해 보면서 자신들의 처지가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상당수 조합원 가구가 상위 30%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나의 기대가 완전히 어그러진 건 아니었다.

여기 한 청년노동자가 있다. “아동이 노동하던 시대, 열서넛 또래 어린 여공들의 배곯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어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 주고, 장시간 노동에 지친 늦은 밤 평화시장에서 창동의 판잣집까지 1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휘청휘청 걷고 뛰며 퇴근하다 야간 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잤던 아름다운 청년. 환기구도 없는 먼지투성이 공장에서 일하다 폐병에 걸려 피 토하는 미싱사를 돕다가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고, 평화시장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동료 재단사를 규합해 바보회와 삼동회를 만들고, 노동청에 청원하고, 언론사에 매달리고, 해고도 되고,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함께 일하고 함께 사는 모범업체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한쪽 눈을 팔려고 시도하고, 그러다 끝내 집회를 열고 한 점 불꽃이 돼 떠나간 고마운 노동자. 세상에 와서 22년2개월을 채 머물지 못하고 떠난 청년노동자 전태일.”(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출범선언문 ‘전태일의 손을 잡고, 연대와 평등의 가치를 일으켜 세우자!’ 중)

지난 7일 전태일다리에서 출범식을 진행한 전태일50주기행사위원회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한 방안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한국 사회는 기회가 평등하지 않듯 위기도 평등하지 않다. 일거리 축소와 소비 위축과 해고 위기가 소외계층으로 집중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손잡고 함께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연대기금 조성운동을 노동자·시민 속으로 넓고 깊게 펼치려 한다.”

이미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시민운동의 인권재단 사람은 모금을 통해 대구지역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도왔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대구지역 취약계층을 지원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와 금융노조 대구은행지부를 포함해 수많은 노조가 조합원 모금을 하고 연대의 대열에 나섰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국가에서 받는 재난지원금 환원을 통한 코로나19 노동재난연대기금 운동을 시작했다. 노사협상을 통한 기금을 모색하는 곳도 많다.

너도나도 코로나19 극복 사회연대기금 운동 대열에 동참하면 어떨까 싶다. 연대가 뭐 거창한 것은 아니다. 연대는 나의 정신이든 시간이든 물질이든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다. 바로 전태일의 풀빵정신이다. 그 풀빵정신이 전태일의 굴하지 않는 실천정신 밑바탕이었다. 옆에서 누군가 배를 곯고 있는데도 제 배만 채우는 노동자와 시민에게 연대투쟁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19 위기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청년노동자를 떠올린다. 올해는 전태일 50주기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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