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1. 대상판결의 쟁점과 판단 요지

대상판결의 쟁점은 “모(母,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5조1호의 ‘근로자의 업무상재해’로 포섭할 수 있는지”였다.

1심 법원은 이를 인정했고, 2심 법원은 이를 부정했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 해석상 임신한 여성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5조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재해’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① 산재보험 제도와 요양급여 제도의 취지·성격·내용에 여성근로자 보호(헌법 32조4항), 모성보호(헌법 36조2항)의 취지를 종합하면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② 산재보험법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되며 ③ 산재보험의 발전 과정,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증명의 어려움, 사업주의 무자력을 고려하면 산재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 근로자·사용주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업무상재해가 발생해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성립하게 됐다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됐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2. 태아의 법적 지위

헌법재판소는 태아를 헌법상 생명권 주체로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 정도나 보호 수단을 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헌법재판소 2012. 8. 23. 선고 2010헌바402 결정, 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 등).

민법은 원칙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부정하지만 개별적인 권리관계에서 권리주체를 인정하는 개별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 살아서 출생함을 조건으로 권리능력의 취득 시기를 문제 시점까지 소급해 인정하는 정지조건설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1976. 9. 14. 선고 76다1365 판결).

대법원은 형법상 태아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임산부에 대한 상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형법이 태아를 독립된 행위객체로 하는 낙태죄 등 규정을 두고 있어 태아를 임산부 신체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한 바 있다(대법원 2007. 6. 29. 선고 2005도3832 판결). 대법원은 상법상 태아가 상해보험계약의 피보험자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 태아의 형성 중인 신체도 그 자체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 존재하고 보호의 필요성도 본질적으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험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6다211224 판결).

이와 같이 태아의 법적 지위는 법의 목적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있다.

3. 학계 의견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가. 학계 의견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상판결의 1심 법원 판결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현행법하에서의 적극적 해석 근거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1)

첫째, 1심 법원이 설시한 헌법합치적 해석 논리가 필요하다.

둘째, 모와 태아 간의 특수한 관계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여성근로자의 몸 안에 있는 태아는 노동현장에 모와 함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혹시라도 있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모가 노동현장에 있었고 노동을 했기 때문에 태아 역시 노동현장에 있었던 것이고, 노동하는 모의 체내에서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여러 위험요인들의 영향을 모와 함께 받으면서 버티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기가 두려워 노동현장을 떠나야 하는 여성들도 생긴다. 여성의 건강권과 노동권은 태아의 건강권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따라서 ‘모의 노동이 없었다면 태아의 건강손상도 없었을 것이고, 태아가 모체 내에 없었다면 태아의 건강손상도 없었을 것이다’는 가정적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면 태아는 모가 노동하던 당시 근로자인 모체에 연결돼, 즉 근로자의 몸을 빌려 생존하던 상태에서 업무상질병을 얻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셋째,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에 입각한 해석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출퇴근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결정에서 산재보험에 대해 “피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의무보험으로, 원래 사업주의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그 재원으로 사업주를 대신해 피재근로자에게 보상해 주는 제도”라고 밝혔다. 이어 “산재보험 제도는 사업주의 무과실 배상책임을 전보하는 기능도 있지만, 오늘날 산업재해는 이미 개별 기업차원의 안전위생시설의 기술적 개량만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고 재해의 위험을 모두 개별 사업주에 귀속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산업재해로부터 피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능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하고 있다. 만일 모의 업무에 기인해 선천성 질환아가 출생해 장기간 혹은 평생 동안 아이의 치료와 특별한 돌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산재보험 같은 적절한 사회보장 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채 아이의 돌봄과 치료를 가족에게만 맡긴다면 결국 가족의 생활을 위협하게 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산재보험 제도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점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넷째, 2012년 1월26일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보장에 의해 커버하는 사회적 위험의 종류 속에 출산·양육·빈곤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는 출산이 더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보장 제도 전반에 걸쳐 사회연대원리하에서 사회공동의 책임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중요한 공적·사회적 문제로 봐야 함을 의미한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상판결의 1심 판결에 대한 리뷰에서 산재보험법을 비롯한 사회보험법제는 시민법적 원리와 구별되는 사회연대원칙에 근거한 법제로서의 특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BvefGE 45, 376)가 밝혔듯이 업무상질병이라는 사회적 위험에서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산재보험법의 목적과 특성을 고려했을 때 시민법적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2)

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대상판결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7월12일 생식건강 유해인자 노출 근로자 및 그 자녀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그중에는 “생식건강 유해인자에 노출된 근로자 자녀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업무상재해에 ‘근로자의 업무상 사유에 따른 태아의 건강손상’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산재보험법 5조를 개정하기 바람”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해 원고들(母, 여성근로자)의 업무상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사례로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 판례다.

대상판결은 2009년 원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지 10여년 만에 모(母)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보험법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현행법을 합헌적인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면 원고와 업무상재해로 태아에 건강손상이 발생한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는 국회의 입법 시점까지 공백상태로 남게 됐을 것이다. 법원의 합헌적 법률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각주
1) 박귀천,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책임-생명, 젠더, 노동에 대한 질문-”, 이화여대 법학논집 22권2호(2017년 12월), 163-167페이지.
2) 구미영, “태아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서울행법 2014. 12. 19. 선고 2014구단50654 판결-”, 노동판례리뷰, 한국노동연구원(2015년 4월), 98페이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