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책 읽는 사람 모양을 한 동상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꽃이 피고 다 지도록 한자리에서 변함없다. 말이 없다. 누군가 거기 씌워 둔 마스크가 다만 시절을 말해 준다. 이마에 머리띠가, 또 그 아래 책에 올려 둔 손팻말이 오늘 길에 나선 사람들의 바람을 전한다. 그 옆 계단에 띄엄띄엄 선 사람들이 할 말을 풀기에 앞서 고개 숙였다. 참사로 죽어 간 이들을 추모했다. 하청, 또 재하청 사슬에 들어 밥벌이 나선 사람 수십이 화마에 휩싸여 더는 말이 없다. 반복되는 참사에 산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말하느라 2020년의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행진한다. 한 걸음쯤은 나아갔느냐고 재차 묻는다. 참으로 변함없다고, 앞선 유가족이 제 일인 것처럼 울었다. 말문 막힌 사람들이 투쟁 머리띠 매는 것을 노동절 맞이 기자회견 상징의식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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