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얼마나 살려고 발버둥쳤을까. 우리 아들 불쌍해서….” 아들을 잃은 엄마는 오열했다.

“동생이 대학생 딸에게 ‘돈 많이 벌어서 용돈 줄게’라고 말했다더라. 조카는 지금도 실신상태인데….” 동생을 화마에 뺏긴 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2008년 1월, 이천 물류창고에 화재가 났고 40명이 희생됐다. 12년이 지났다. 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변하고, 바뀔 수 있는 것은 모두 바뀐 시간이다.

중학생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주말도 쉬지 않고 일한 강씨. 돈을 아끼기 위해 끼니를 거르는 그를 위해 동료는 컵라면과 찬밥을 준비해 함께 식사했다. “이게 마지막 식사일 줄 알았다면 더 좋은 걸 사다 줄 걸.”

같은 장소에서 다시 큰 불이 났고 38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손주가 2명인 할아버지가,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아들이, 대학생 딸 방세를 벌려던 아빠가, 함께 일하던 아들과 아버지가 가족과 이별했다.

12년 전과 변하지 않은 것은 이들 대부분이 하청노동자고, 이주노동자라는 것이다.

‘화재발생 직전 작업장 내에는 사고방지를 위한 아무런 대비책도 준비되지 않았으며, 여러 명이 근무하거나 거주하는 위험시설에서의 대표 교육 등 전반적인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2008년 언론보도)’는 것도 바뀌지 않았다. ‘화재에 취약하고 유독가스를 내뿜는 저렴한 건축자재를 사용했다(2020년 언론보도)’는 것도 같았다.

같은 슬픔이 반복되는 12년 사이에 수많은 ‘참사’가 자리 잡고 있다. 구의역 김군이, 특성화고 이민호군이,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이 있었으며 세월호가 있다.

수많은 슬픔이 반복돼도 과거의 참사를 잊어버린 우리는 끊임없이 속절없게 소중한 생명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슬픔의 순간 함께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슬픔을 삭제한다. 잊혀졌기에 반복되는 참사를 그저 순간의 ‘슬픔’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중략)/ 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 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저 새벽별이 질 때까지/ 슬픔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말라”(정호승 <슬픔을 위하여> 중)

시인의 이야기처럼 슬픔을 위해서 우리는 슬픔의 새벽에 대해 말해야 한다. 슬픔의 시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대답은 간명하다. 슬픔은 법·제도의 미비에서 온다. 지금까지의 비극은 산업재해이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2배가 높은 노동자들이 매년 죽고 있다. 대부분이 사내하청·일용직 같은 비정규 노동자다.

하지만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처벌은 솜방망이만도 못하다. 세월호 참사 3주기인 2017년 4월 고 노회찬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지만 사용자단체의 반대와 국회의 무책임으로 여전히 먼지에 덮여 있다.

‘중대’한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처벌’이 어려운 국가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이천 화재에 대해 애도하는 대통령과 여당 유력정치인들은 이 법에 대한 명확한 입장으로 슬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전에는 누구도 ‘슬픔을 이야기하지 마라’.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