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이 먼저였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돼 선천성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여성 노동자에게 산재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우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본이념이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와 그 가족의 헌법상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 있고,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궁극적으로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한 것임을, 다시 말해 산재보험이 일 때문에 아프거나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 또는 유족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고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임을 다시 확인했다.
두 번째, 대법원은 업무상재해를 판단함에 있어 산재보험 제도와 요양급여 제도의 취지·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를 때 여성노동자의 일 때문에 태아가 아프게 됐다면 산재에 해당하며, 아이가 태어나도 산재급여를 지급함이 타당함을 분명히 했다.
세 번째, 대법원은 국가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해 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신·출산 부담을 덜어 주고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짐을 확인했다.
이와 같은 판결의 의의을 고려할 때 향후 입법은 재해를 입은 노동자가 최소한의 치료와 생활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업무로 인해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2세의 업무상재해를 입법적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경우 아이가 최소한의 치료를 받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요양급여·장해급여·간병급여·직업재활급여를 지급하며, 아픈 아이의 돌봄을 위해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휴직 등을 허용하지 않거나 이를 이유로 불이익한 처분을 할 때에는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더해 2세의 건강 손상과 관련해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직업병 목록·재해인정기준을 추가하고,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상 임신노동자 금지업종을 실질화하길 바란다. 더 나아가자면, 남성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재생산건강 손상, 2세의 건강 손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반도체산업 남성노동자 배우자의 자연유산 증가에 관한 논문이 이미 나와 있다.
곧 불안한 소식들이 들려 왔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공사현장의 사망사고 기사였다. 4명이었던 사망자는 38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이 일용직이고, 건물 내부에 우레탄폼 작업이나 도색 작업을 하면서 유증기가 가득 찬 상태에서 폭발했다. 때문에 순간적으로 탈출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 상황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 감리자가 화재가 일어난 순간 작업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감리업체를 발주처가 임의로 지정하는 ‘셀프 감리’가 위험을 방치했다,
안전보건공단이 유해위험방지 계획서를 심사·확인한 후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서류심사에서 2차례, 현장 확인에서 4차례, 총 6번이나 화재위험이 크다는 지적을 했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명백한 산재였다. 유족들은 정확한 원인 규명, 사고 당시 안전수칙 준수 여부 확인, 보상과 장례에 대한 안내, 정부 차원의 빠른 대처를 요구했다. 우리는 고 김용균 노동자 때도, 고 문중원 기수 때도 진상조사·책임자 처벌·사과·재발방지·보상과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늘 노동자의 잘못이라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일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생기면 사측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게 하고, 현장소장만이 아니라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양형기준을 실질화하길 제안한다. 대법원이 지난달 29일에 말한 것처럼 일 때문에 아프거나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 또는 유족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고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법이 작동할 수 있길 바란다.
2020년 4월29일
천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마중)
- 기자명 천지선
- 입력 2020.05.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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