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줬던 국회의원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내 편 들어줄 사람이 없는 사람, 정치가 내 머리털 하나 바꿀 없다고 체념하는 사람, 그렇게 소외받는 사람들 곁에 찾아가겠어요. 정치는 약자의 무기여야 합니다. 정치가 내 일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습니다. 좀 더 쉽게 나의 언어로 말하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류호정(28·사진) 정의당 국회의원 당선자를 만났다. 그는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됐다.

류호정 당선자에게는 20대·청년·최연소·여성·노동 등 많은 키워드가 붙는다. 청년 비례대표인 그는 1992년생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자다. 게임회사에 입사해서 노조를 설립하려다 권고사직을 당한 여성노동자 출신이다. 정의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경기도당 여성위원장·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 이력을 갖고 있다.

‘노동의 경험’이 정치의 길로 이끌다
“국회 담장 못 넘는 노동자 목소리 답답했다”

- 당선 소감은.
“당선 직후 현실감이 없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알아봐 주는 사람도 있더라. 그들과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잘해서 성과로 대답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류 당선자는 자신을 정치의 길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노동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갈아 넣는다는 게임회사 노동환경을 바꾸고자 노동운동을 하고 해고노동자가 된 그의 경험 말이다.

“대학 졸업 뒤 게임회사에 입사했는데, 세상이 만만치 않더군요. 장시간 노동에 그냥 쉽게들 잘려요. 근로계약서나 포괄임금제 이런 것도 몰랐죠. 넷마블 과로사 사건 뒤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나왔는데 그제야 떼먹은 야근수당을 주더군요.”

그가 다니던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에 노조설립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더 결정적 계기는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본 것이다.

“우리 회사가 있는 판교에서 네이버지회가 만들어지고, 노조를 통해 권리를 찾는 것을 봤죠. 회사에서 혼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노조를 만들어 같이 대응하자고 생각했어요. 게임업계는 어디나 상황이 같으니까요. 노조설립 과정에서 근로자대표를 맡았는데, 한 달반 만에 권고사직을 당했어요. 이유도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더군요.”

- 결국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노조설립은 코앞에 닥쳤는데, 내가 노조설립하는 데 도움이 안 되나 싶었다. 자존감이 많이 깎인 상태였다. 결국 (권고사직에) 사인했는데, 스스로 너무 한심하더라. 과거 (노동운동) 선배들처럼 얻어맞은 것도 아니고.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점에서) 그게 죄책감으로 남았다. 그 경험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그는 해고된 뒤에도 스마일게이트 노조설립을 돕는 한편 화섬식품노조로 자리를 옮겼다.

“화섬식품노조에서 일하다 보니, IT업계만이 아니라 많은 노조 현안에 대응하게 됐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 국회 앞에서도 집회를 많이 했는데, 노동자 목소리가 국회 담을 넘지 못한다는 현실을 봤습니다. 갑갑했어요. 직접 (국회에) 들어가자, 마음먹게 됐죠.”

2030세대 전진배치 명과 암 “원팀”으로 돌파
1호 법안은 “노동자 갈아 넣는 포괄임금제 폐지”

류 당선자는 “심상정을 뛰어넘겠다”는 20대 청년의 패기 있는 출사표를 던지고 총선에 나섰다. 그러나 총선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대리게임’ 논란 때문이다.

“대리게임 자체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당시에도 사과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과하며 살겠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진 건 이를 이용해 취업한 게 아니냐는 것인데, 취업할 때 쓴 게임등급은 (대리게임이 아닌) 제가 직접 게임을 해서 얻은 등급입니다. 대리게임을 통해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이득을 얻은 것은 전혀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최초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에 따라 원내교섭단체 의석 확보를 목표로 뛰었다. 2030 청년세대를 비례 1·2번으로 과감하게 전진배치해 진보정당다운 면모를 보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등장으로 그 목표는 물거품이 됐고, 국회와 정당을 오래 경험한 당선자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게 됐다.

▲ 정기훈 기자


- 정의당은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어떻게 평가하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가 훼손됐다. 정의당은 정당득표에서 10% 가까이 받았지만 의석비율은 2% 수준에 그친다. 선거제 개혁을 통해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돼야 한다. 비례 위성정당을 할 수 없도록 먼저 해결해야 한다. 심상정 대표가 2017년 대선 당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꿈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자”고 했다. 총선 슬로건인 ‘원칙을 지킵니다’는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10% 가까운 유권자가 정의당을 지지해 줬다. 정의당은 원칙과 노동자를 지키면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 당 안팎에서 경험이 부족한 당선자들에 대한 불안한 시각이 존재한다.
“원팀 정의당이 되자고 다짐하고 있다. (당선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손발이 돼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적은 인원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거대 양당체제가 공고화하는 가운데 진보진영 목소리를 확실히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성과를 내서 증명하겠다.”

- 21대 국회서 반드시 달성하고자 하는 노동공약은.
“제가 1호 입법으로 약속한 것이 포괄임금제 폐지다. 21대 회기 내 꼭 할 것이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공짜노동을 유발한다. 종국에는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 이상 자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전태일 3법’ 역시 노동자와 함께 이뤄 내야 할 과제다.”

“악 소리도 못내는 사람들 챙기겠다”
“청년들이 하던 대로 하다 보면 국회도 바뀐다”

- 코로나19 사태로 청년고용이 심각하게 위축됐다.
“채용시장이 얼어붙어 청년층 타격이 크다. 청년노동자들은 당장 월세 걱정부터 한다. 노동자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고용보험 미적용자가 1천300만명이다. 최소한의 울타리도 없는, 그야말로 ‘악 소리’도 내지 못하는, 너무 쉽게 투명인간이 되는 사람들부터 챙겨야 한다.”

류 당선자는 “노동자의 스피커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를 담당하다 보면 작은 사업장일수록 투쟁 소식을 알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 방치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사업주는) ‘배 째’라고 합니다. 답답했어요. (언론을 통해) 밖에 알려지는 게 필요했지요. 그게 안 되니 고공농성 같은 처절한 투쟁방식을 택하게 되는 거죠. 스피커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런 스피커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2030 청년들의 국회 입성 의미는 뭘까. 국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국회 본청에 들어갈 때 기존에는 정문 옆 회전문으로 드나들었는데, 당선 뒤에 국회 경위가 레드카펫이 깔린 정문으로 입장하라고 하더라. 정문으로 들어가나, 쪽문으로 들어가나, 안에서 만나게 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런 사소한 권력구조부터 해체해야 한다. 2030 당선자는 모두 13명이다. 2030세대 인구가 30%를 차지한다는데, 의석은 4.3%에 불과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2030 국회의원 모임이 만들어진다면 참여하고 싶다.”

류 당선자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비장하기 싫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청년들이) 젊어서 유난 떠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일상이 달라요. 뭘 바꾸겠냐고 하는데, 그냥 내가 하던 대로 할 거고, 하던 대로 하면 다를 것이고, 그러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비장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도 청년들의 특징이죠. 너무 비장하면 사람들이 오글거려 합니다.(하하) 비장하기 싫어요. 그냥 하면 됩니다.”

- 21대 국회에서 어떤 상임위원회를 선택할 건가.
“정의당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 인기가 높다. 나도 환노위에 가고 싶다고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 노동자 당선자가 많아서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경쟁이 심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