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경사노위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산업별·업종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산업재해예방사업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정부에 요구하고, 산업안전보건행정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행정체계 개편을 주문했다.

과로사방지법 제정 권고 합의 불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의제별위원회인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노사정은 과로사·장시간 노동 예방, 서비스종사자 안전보건 강화, 중소기업 안전보건 강화, 산업안전보건행정체계 개편방안 등 네 가지 주제에 합의했다. 논의 과정에서 노사는 과로사 부문에서 크게 충돌했다.

과로사 문제는 노동시간 규제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노동계는 2014년 일본에서 시행된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 사례를 근거로 삼아 한국형 과로사방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재계는 기업에 대한 규제라며 반대했다. 전형배 산업안전보건위 위원장 직무대행은 “과로를 막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문제는 노사가 크게 충돌하는 이슈고 우리 위원회에서 다루기 힘든 의제였다”며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 노사가 인식을 같이하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앞으로 논의하자고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은 과로사방지법 제정 대신 실태조사 TF를 가동하기로 했다. 업종별 근무형태와 노동시간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다. 장시간 노동 예방을 위한 조사·연구와 교육·홍보 등 종합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비스종사자와 중소기업 안전보건 강화 방안도 추진한다. TF를 구성해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고용구조·형태와 서비스업 고유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한다. 실태조사를 근거로 정책을 제안하고 법·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중소기업 대상 산재예방정책 개선을 추진할 TF도 구성한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하거나, 노동부 개편 모색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유일하게 이행을 약속한 내용은 산재예방사업비에 대한 일반회계(정부지원) 지원 확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95조는 산재예방사업을 위해 산재보험기금 지출예산 총액의 3% 범위에서 정부가 출연금으로 지원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원회의 2006년·2008년 합의를 반영한 법조문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기금 총지출 규모는 6조9천61억원이다. 정부는 3%에 해당하는 2천억원을 지원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92억원만 냈다. 2008년부터 12년째 동결이다. 노동계는 산업안전보건위에 참여한 기획재정부에 3% 이행을 강하게 요구했다. 기재부는 “지원규모를 매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산업안전보건 행정체계를 개편하기로 합의한 점도 주목된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산업안전보건 행정을 집행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하거나, 노동부 부서·행정체계 개편을 추진한다. 전 위원장은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전문적인 영역이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 순환보직제에 따라 책임자가 계속 바뀐다”며 “가능하다면 오랜 기간 정책담당자가 몸담고 현장에서 제도를 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방안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보자는 얘기다.

이날 합의가 구체적 이행계획을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과로사·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정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점은 작지 않은 성과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산업안전보건행정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고, 과로사방지법까지는 아니지만 장시간 노동 개선을 위한 방안을 찾기로 한 점은 의미가 있다”며 “노사정 합의가 구체적 행동을 담지는 못했지만 이후 논의를 계속해 구체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합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TF 구성 등 합의를 실행할 단위를 만들기로 한 점”이라며 “사회적 압력으로 합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는 지난해 10월 경사노위 본위원회에서 의결한 탄력근로제 합의의 후속합의 성격을 갖는다. 당시 노사는 과로 방지대책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산업안전보건위는 지난달 2일 전체회의에서 합의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발표를 미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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