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교회 부목사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성직자’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느냐는 쟁점과 맞닿아 있는 논쟁적인 사안이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이 있어 교회 밖 ‘사회법’이 부목사의 노동(?)조건에 관여하는 것에 법적 판단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대다수 부목사들이 담임목사에게 종속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사례비를 받는 상황이라면, 담임목사가 그만두라고 하면 한순간에 쫓겨나는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떨까. 더군다나 부목사 사례비의 최소 두 배 정도를 받아가는 담임목사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그나마 부목사 자리도 경쟁률이 만만치 않아 열악한 근무환경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떨까.

세종시 한 교회에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 부목사 A씨가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채용 당시 담임목사는 3년 계약을 구두로 약속했는데, 1년 뒤 갑작스럽게 당회에서 연임 청원을 하지 않겠다고 결의하면서 A씨는 쫓겨나고 말았다. A씨는 “3년간 근무하기로 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무하던 중 구두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해고예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당한 해고사유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담임목사측은 “총회(교단) 헌법에 따른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부목사 A씨가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1심 법원은 각하, 2심은 기각했다. A씨는 지난 1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개신교 교역자의 근로자성을 쟁점으로 한 소송이 대법원까지 간 첫 사례다.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설교 내용 이단시하며 해고
이단성은 공공성 있는 기관에 확인해야”


26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서울고등법원 판결문과 원고 A씨의 말을 종합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의 한 교회 담임목사 B씨와 A씨는 3년 동안 A씨가 부목사로 재직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구두로 체결하고 2017년 5월7일 업무를 시작했다.

B씨는 같은해 4월11일께 면접 당시 “한 번 계약하면 3년, 한 번 연장하면 5년”이라며 “최소 3년 동안의 계약기간은 반드시 보장해 줄 테니, 3년 동안은 다른 사역지로 이동하지 말고 우리 교회에 꼭 남아 달라”고 말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949명의 부목사를 대상으로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한국 개신교 내 교회가 부목사 채용 면접 때 무려 93.9%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담임목사가 구두로 대충 결정해 주는 것이 관례”라며 “3년간의 계약기간이 보장되는 것으로 신뢰하고 교회가 있는 세종시까지 이사를 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는 업무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실상 해고됐다. A씨는 “담임목사는 내가 예전에 유초등부 교사들에게 전한 ‘말씀’을 빌미로 2018년 3월28일 교역자회의 시간에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이단시하고 해고를 주도했다”며 “2018년 4월8일께 공식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내가 한 설교에서 이단성이 발견됐다면 담임목사 개인 생각만으로 해고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이 있는 이단연구소 등에 해당 설교를 보내 확인을 받은 뒤 잘못을 지적하고 교정해 줘야 맞다”며 “그럼에도 교정되지 않고 계속 이단의 범주에 머문다면 그때 해고를 논의해도 늦지 않는데 담임목사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해고와 관련해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주장도 펼쳤다. B씨가 당회 결정이라면서 구두로 해고통고를 한 것은 2018년 3월28일 열린 교역자회의 자리였는데, 해고를 안건으로 논의한 임시당회는 나흘 뒤인 4월1일 열렸다는 것이다. A씨는 “B씨가 이미 해고하기로 결심한 뒤 형식적으로 임시당회를 열어서 본인의 뜻을 관철했다”며 “출석요구 통지도 받지 못했고 소명·해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담임목사 “부목사는 근기법상 근로자 아냐”

이에 대해 B씨는 “해당 문제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 원칙에 따라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총회 헌법에 따라 당회가 A씨에 대한 연임청원을 하지 않기로 결의함으로써 A씨의 부목사 시무기간이 2017년 5월1일로부터 1년 뒤인 2018년 4월30일 종료됐을 뿐”이라는 얘기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 총회 헌법 3편(정치) 5장28조에는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임시목사니 당회의 결의로 청빙하되 계속 시무하게 하려면 매년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해 승낙을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B씨는 “A씨는 근로계약이 아닌 부목사로 청빙하는 위임계약을 체결한 것임으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의 부목사로서의 임기를 3년으로 약정한 적 없다”고 했다.

1·2심 법원도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B씨가 A씨에게 시무기간이 3년이라고 말한 취지는 부목사로서의 시무기간을 3년으로 약정한 것이라기보다는 A씨가 부목사로서 목회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인들·위임목사와의 신뢰관계가 훼손되지 않는 한 계속 시무할 수 있도록 당회가 노회에 연임을 청원하겠다는 취지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지원은 “B씨가 부목사로 연임돼 계속 시무할 수 있는지 여부는 B씨와 교인들 사이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데, A씨의 설교내용이 B씨의 신앙관이나 목회관과 배치된다는 우려를 표명했고, 이에 당회에서 더 이상 부목사로 청빙하지 않기로 결의한 사실이 인정됐다”고 밝혔다. 서울고법도 “1심 판결이 정당하고 A씨의 항소는 이유가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부목사, 당회장 마음에 들어야 1년 더 계약연장 되는 비정규직”

한편 A씨는 부목사 시무환경 개선을 위한 개신교 내부 권력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회 내 권력이 주로 담임목사에게 집중돼 있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목소리다. A씨는 “총회 헌법은 담임목사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담임한 교회를 70세까지 시무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데, 부목사는 매년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해 승낙받게 하고 있다”며 “해당 내용이 담임목사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담임목사와 부목사 모두에게 6년 임기제를 도입하면 이 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목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부목사는 장례·결혼·심방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을 도로에서 운전으로 보내고, 옥상 현수막을 걸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오르거나 위험한 기계를 다루는 일도 종종 있다”며 “그럼에도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어서 사고를 당한 뒤 보상을 받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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