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학교가 정말 어려워서 갱신을 거절했다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근데 갱신을 거절한 강사수만큼 신규강사를 뽑겠다고 채용공고를 올린 걸 보니 억울하더라고요.”

한 대학에서 근로계약 갱신이 거절돼 상담을 받으러 온 기간제 노동자의 말이다. 많은 대학이 국제교육원 강사와 계약을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체결한다. 계약서만 보면 기간제 노동자가 맞다. 그런데 채용공고에는 재계약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강사가 주로 담당하는 업무는 교육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상시적이고 필수적인 강의 업무다. 또한 교육원에서 장기간 일하고 있는 강사들도 모두 단기계약을 반복적으로 갱신해 온 관행이 있다. 노동자는 당장 채용되기 위해서라도 기간제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만,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장기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계약이 갱신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갱신을 거절당한 것이 억울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은 백이면 백 이번 계약이 갱신되면 총 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경우다. 2년을 초과하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의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되는데, 대학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갱신을 거절한 것이다. 빈자리는 또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채워지고, 정규직 전환을 향한 희망고문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기간제법이 생기기 전에도 해고제한 법리를 피하기 위해 기간제 근로계약을 ‘악용’하는 사례는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갱신기대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는 경우 갱신기대권의 존재를 인정한다.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면, 사용자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갱신을 거절할 수 없다.

기간제법을 회피하려는 학교의 꼼수로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교육원 강사들이야말로 갱신기대권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진행했다. 그런데 대학측 답변서를 받아 보니 갱신기대권을 둘러싼 우려와 반감이 상당했다. Y대학은 “갱신 기대권의 인정 범위가 확대되면 기간제법이 사문화될 수 있고, 이는 기간제법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기간제법 취지는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동일한 취지로 형성된 갱신기대권 법리를 제한하는 논거가 될 수 있을까? 기간제법이 근로기간 2년을 초과한 노동자를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2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는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텐데 말이다.

또 유사한 사건에서 H대학은 “만일 이 강사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면 다른 강사들이 동일한 주장을 할 것이고, 이는 모든 기간제 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초래하게 되는 바 노사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감을 표했다. 그러나 갱신기대권 인정은 ‘계약을 무조건 갱신하라’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하지 마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대학이 경제적으로 정말 어렵다면, 그 상황을 정직하게 공개하고 노동자와 함께 방도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대학에서는 일시적으로 학생수가 감소하자, 강사들끼리 강의시수를 조정해 가며 위기를 극복하려 하기도 했다. 그 어떤 노동자도 노사 공멸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용자들이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불안 심리를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손쉽게 해고한다. 사실은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런데 기간제 근로계약 남용을 막기 위한 기간제법이 취지에 맞지 않게 작동하고 있다. 오히려 2년 미만이기만 하면 기간제 노동자를 마음껏 고용해도 된다는 사용자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문제라고 여긴다면 당장에는 노동자의 갱신기대권이라도 좀 더 넓게 인정해야 한다. ‘합리적 이유’ 없이 갱신을 거절하지 마라는 것은 결코 사용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1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고, 무거운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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