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직원이 직장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뒤 다른 사유를 이유로 해고됐다면 부당해고로 인정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낮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해고된 직원이 인턴이라면? 게다가 직장 상사의 부당한 지시가 일터 내에서 용인되는 분위기라면? 회사가 인턴 직원에 대해 인턴 기간 만료시 본계약의 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보통의 해고보다 넓게 인정된다는 특수성을 비롯해 여러 쟁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판단이 쉽지 않을 듯하다.

최근 이 같은 쟁점을 안고 있는 사건이 한 공공기관에서 발생했다. “정규 근무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라”는 선임의 지시를 거부해 분쟁이 있은 뒤 인턴 기간이 끝나고 채용거절된 A씨 사례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A씨 손을 들어줬는데, 이에 불복해 회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A씨가 21일 항소할 예정인데 고등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

인턴 손 들어준 노동위, 공사 편 들어준 행정법원

20일 서울행정법원 판결문, 중노위 결정문을 종합해 보면 A씨는 2018년 9월17일 한국도로공사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약 3개월간 인턴 기간을 지낸 뒤 근무평정을 1회 거쳐 근무평정이 80% 이상이면 실무직(무기계약직)으로 임용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A씨는 5개 항목 중 ‘신뢰와 협력’ 요소에서 기준 이하의 평가를 받아 실무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A씨는 지난해 1월27일자로 일자리를 잃었다.

A씨는 채용이 거절된 것이 직장 상사 B씨와의 불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B씨가 2018년 10월 회식자리에서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출근해서 업무도 배우고 작업 준비도 하라”는 취지의 말을 했지만 A씨는 거절했다. A씨는 “출근시간은 오전 9시까지였는데 이미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오전 8시30분까지 출근하고 있었다”며 “B씨는 일찍 와서 선배들 커피도 타고 청소도 하라는데 이는 업무 외 지시였고, 자차도 없어 더 일찍 출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가 거절하자 B씨는 욕설을 했고, A씨는 다음날 해당업무를 총괄하는 C씨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A씨는 같은해 12월4일 감사실에 ‘B씨가 욕설을 하고 금연 장소에서 흡연을 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취지로 신고했다. 이 제보에 따라 공사는 이듬해 1월 B씨에게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주의’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항거’는 A씨에게 화살이 돼 돌아왔다. 2018년 12월16일 수습기간이 종료돼 같은달 18일 진행된 1차 수습근무평정에서 평가자들은 ‘신뢰와 협력’ 요소에서 ‘계속관찰’로 평가했다. A씨는 “평정에서 ‘계속관찰’이 나오면 원칙적으로는 한 번 더 재평가를 하게 돼 있는데,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나는 재평가를 받기 위해 한 달 더 근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진행된 2차 수습근무 평정을 거친 뒤 공사는 A씨와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결정했다.

“직장내 괴롭힘 보호 인턴에겐 먼 얘기”

해당 사건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노동위와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지난해 3월 지노위, 7월 중노위가 모두 부당해고 판정을 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이달 9일 도로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중노위는 “본채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근무평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보이지 않아 본채용 거부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중노위는 “A씨가 최초 평정 당시 ‘계속관찰’로 평가받은 요소는 ‘신뢰와 협력’이 유일한데, 위 평가의 주된 요인은 A씨와 B씨의 분쟁이 있은 이후 B씨에 대해 업무공간인 대기실 내에서의 흡연사실을 감사실에 제보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보인다”며 “이 분쟁과 감사실 제보는 A씨의 개인적 일탈이나 귀책사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용자의 관리·책임 범위 내에 있었던 사안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서울행법은 “회사가 A씨에 대한 본채용을 거절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고 사회통념상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행정법원은 “도로공사가 인턴제도를 운영하는 취지는 인턴기간 동안 업무를 부여하고 정규 직원으로서의 업무능력·자질·인품 등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한해 정규 임용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턴직원에 대해 본채용을 할지 여부는 정규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와 비교했을 때 더 많은 자율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같은 작업원들뿐 아니라 협업의 상대방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A씨는 “공기업인 도로공사는 선임의 잘못을 신고한 피해자는 해고하고 신고당한 사람에겐 주의 처분만 했다”며 “요즘 직장내 갑질 근절이 사회적으로 이슈이지만 현장에서, 특히 인턴에겐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도로공사측은 “인턴기간 뒤 받은 평정에서 점수가 기준에 미달해 정규직 전환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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