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21대 총선은 문재인 정권의 안정을 바라는 거대한 민심을 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정치·경제·사회적 위기에 가장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여당을 선택한 것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라는 제도 덕분에 의석수에서는 자유민주정당이 압승했지만, 결과를 냉정히 따져보면 극우의 기반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한 선거이기도 했다.

전국 판세와 가장 비슷한 곳이 서울 종로다. 여기서 이낙연과 황교안의 득표율은 58.38%와 39.98%였다. 정의당은 후보를 내지 못했고, 민중당 후보는 0.29%를 얻었다. 종로의 정당투표 결과는 미래한국당이 33.30%, 국민의당이 7.70%를 얻어 수구보수의 득표율이 40%를 넘었다. 반면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은 32.82%와 6.52%, 정의당은 9.75%를 얻었다. 종로의 정당투표는 전국 결과와 대동소이하다. 이를 종합할 때 이번 총선 투표자들의 성향은 자유민주 지지 50% 안팎, 극우 지지 40%, 사회(민중)민주 지지 10%로 나뉜다.

2016년 4월 총선으로 등장한 20대 국회가 보여준 난맥상이 주로 미래통합당의 술수와 난동 때문임을 돌아볼 때 이번 총선에서 극우정당 지지가 거의 하락하지 않은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종로에서 정세균은 52.60%, 오세훈은 39.73%, 박태순(국민의당)은 5.61%를 얻었다. 정당 투표는 새누리당 32.40%, 더불어민주당 27.85%, 국민의당 25.11%, 정의당 8.84%였다. 국민의당 지지자 성향이 극우에서 자유민주에 걸쳐 있음을 감안하면, 2016년 투표자들의 성향도 2020년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 동안 극우정당 지지율은 거의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두 총선의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투표자 성향은 극우 40%, 자유민주 40%, 사회(민중)민주 10%, 그리고 극우와 자유민주를 오가며 선거를 결정짓는 부동층 10%로 단순화할 수 있다. 부동층 10%가 극우 40%에 쏠리면 극우정당이 이겼고, 자유민주 40%에 쏠리면 자유민주정당이 이겼다. 지역별 소선구제에 기반을 둔 국회의원 투표의 결과는 사회(민중)민주 지지율 10%를 사실상 사표로 만들면서 부동층 10%가 쏠리는 정도에 따라 자유민주와 극우정당이 압승과 신승(辛勝)을 오가게 만들었다. 자유민주정당은 지난 총선에서 부동층 10%를 국민의당에 놓쳐 가까스로 1당이 되는 신승을 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부동층 10%의 대부분을 끌어당기는 데 성공함으로써 180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튼튼해지려면 투표자의 40%인 극우 지지자 규모를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정당과 사회(민중)민주정당은 부동층을 넘어 극우 지지자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오는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럴 때라야 자유민주 세력과 사회(민중)민주 세력, 즉 현대적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의 본격적 경쟁이 가능해진다. 이는 투표자 40%의 지지 기반을 가진 자유민주정당과 역시 40%의 지지 기반을 가진 사회(민중)민주정당, 그리고 10%의 지지 기반을 가진 극우정당과 나머지 10%의 부동층으로 한국 정치 지형을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 전략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정치지형을 극우·자유민주·사회(민중)민주로 재편하는 그림을 그렸다. 극우정당과 자유민주정당을 등가의 경쟁자로 간주했고, 민주노동당 안에선 ‘열린우리당 2중대’라는 표현이 나왔듯이 당시 야당인 극우정당보다 여당인 자유민주정당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강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둘 다 내파(內破)되고 말았다. 그 결과 투표자의 50%를 훨씬 상회하는 지지층을 등에 업은 극우정당이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을 모두 거머쥐면서 한국 사회는 극우파시즘 망령에 시달려야 했다. 극우로 치닫던 정치지형은 201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정당의 신승과 사회(민중)민주정당의 재정비, 그리고 ‘촛불 항쟁’에 이은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의 파탄을 간신히 모면하게 됐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극우정당과 자유민주정당 사이에 샛강이 흐르고 자유민주정당과 사회(민중)민주정당 사이에 장강이 흐른다는 판단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겪으며 변화한 한국정치 지형은 자유민주정당과 사회(민중)민주정당 사이에는 샛강이, 자유민주정당과 극우정당 사이에는 장강이 흐르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사회(민중)민주정당이 자유민주정당의 ‘2중대’가 돼야 함을 뜻하는 게 아니라, 두 흐름이 ‘협력적’ 경쟁 관계를 가져야 함을 뜻한다. ‘적대적’ 경쟁은 극우정당과 해야 한다.

자유민주정당은 2016년 총선 이후 모든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지지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됐다. 이런 성과는 10%의 부동층을 자기 품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함으로써 가능했다. 2020년 총선에서 정당 투표까지 거대 양당으로의 쏠림 현상이 컸던 점을 감안할 때 사회(민중)민주정당의 성적표는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200만표에 못 미쳤던 사회(민중)민주정당의 득표는 이번에 300만표를 넘어섰다. 제대로 된 사회(민중)민주정당을 기다리는 투표자들의 염원은 여전하다고 판단된다. 주체가 ‘제대로 한다면’ 이번에 얻은 300만표는 오는 대선에서 400만표가 되고, 다음 총선에서 500만표로 자라날 수 있다.

부족한 자원과 능력을 갖고 다른 데보다 더 잘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미 가진 걸 소중히 여겨 잘 헤아려야 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해야 할 일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그리고 꾸준히(能久)’ 하면서 나아간다면 언젠가 사회(민중)민주정당이 1천만표를 얻어 1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2000년 민주노동당 출범 이래 사회(민중)민주정당이 선거에서 300만표를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중 270만표는 정의당이 획득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가 277만표였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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