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진짜 많이 발전했다. 나중에 여기에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 “이걸로 카드 대신 계산하고 버스도 타고.” “야, 말이 되냐. 그러면 티브이도 볼 수 있게?”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대사다. 1999년 봄, 드라마 주인공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스마트폰은 옛날을 소환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이제 통화성능은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이 아니다. 손 안의 전화가 펼쳐 내는 기술발전은 ‘옛날 사람’이 따라가기 숨찰 지경이다.

예컨대, 배달이 그러하다. 아주 오래되지 않은 과거, 대부분의 집 전화기 옆에는 동네 상가에서 발행한 광고책자가 놓였고, 냉장고 옆면에는 각종 홍보용 자석이 붙어 있었다. 정보를 찾아본 소비자는 전화기를 들어 직접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으면 계산을 했다.

반면 지금은 소비자의 ‘수고’가 필요하지 않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통해 주문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달대행시장의 크기는 7조원에 이른다. ‘아이스크림 하나도 배달되는 충격적(배달의민족 광고문구)’인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하지만 우리의 ‘수고’를 덜어 준 거창한 ‘혁명’은 째째하게(!) 수수료로 지탱된다. 배달대행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이 며칠 전 광고정책을 개편했다. 개편안의 주 내용은 수수료 인상이다. 수수료 체계를 정액제에서 주문 1건당 5.8%를 떼는 방식으로 바꿨고, 자영업자들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배달의민족은 배달라이더에게 주던 추가 수수료는 폐지했다. 건당 기본 배달료 3천원에 추가로 지급했던 500~2천원의 수수료를 라이더들의 동의 없이 없앴다.

두 손에 떡을 든 놀부처럼 자영업자와 배달라이더를 양손에 올려 놓은 배달의민족은 받아야 할 수수료는 올리고 지급해야 할 수수료는 폐지하면서 이익을 챙긴다.

그럼에도 배달의민족의 무한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점유율 절반(55.7%) 넘게 차지한 배달의민족이 지난해 12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로 매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DH는 현재 국내 배달시장 2위인 요기요(33.5%)와 3위 배달통(10.8%)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 시행될지 모르는 시장 독과점에 대한 규제와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정책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지난달부터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무료수수료 배달앱을 직접 운영하는 전라북도 군산 사례가 눈에 띈다. 군산 ‘배달의 명수’는 가맹점 등록비는 물론 중계수수료도 없다. 지역화폐를 이용해 결제하면 할인혜택도 제공한다. 다만 군산시는 배달라이더 제도는 운영하지 않는다.

군산의 사례를 확장해 지자체와 자영업자·노동계가 함께 배달시장 모델을 만든다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배달의민족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독과점 배달앱의 횡포를 억제하고 합리적 경쟁체계를 만드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서울시는 한국노총·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와 함께 ‘제로페이 활성화와 경제민주화 추진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경기도나 서울시를 포함한 지자체와 자영업자·노동자와 같은 배달시장의 ‘을’들이 함께 나선다면 문제 해결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카드 수수료를 해결하기 위한 ‘제로페이’를 확장해 자영업자는 ‘배달 수수료’ 부담을 줄이고 배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모델을 만든다면 상생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상생에는 소비자도 포함된다. 중간착취가 사라지면 적정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이 정도 돼야 비로소 4차 산업은 인간을 위한 기술이 되고 혁명도 제 이름값을 하게 된다.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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