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전문가들은 사태가 금세 진정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감염병은 일상을 흔들고 생명까지 위협한다. 환자 지근거리에서 온몸으로 감염병과 맞섰던, 지금도 맞서고 있는 의료노동자들 눈에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어떻게 비쳤을까. 의료현장 노동자들이 실태와 과제를 보내왔다.<편집자>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이미 장기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19의 최근 발병 통계에 의하면 치명율이 높지 않은 반면 잠복기에 감염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영악한 바이러스는 에볼라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와는 달리 ‘얇고 길게’ 살아남는다. 그래서 숙주가 감염 여부를 알지 못한 채 활동을 지속하도록 놓아 둠으로써 광범위한 전파를 만든다.

해외유입이 새로운 감염원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대유행(팬데믹)이 지속돼 5월 넘어 전 세계를 돌아 다시 확산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전한다. 대구·경북의 상황이 안정화되고 있으나 소규모 클러스터 감염이 드문드문 발생하며 상황이 지속될 우려가 크다. 반면 치료제나 백신 개발도 어렵다. 언론에 치료제나 백신 개발 기사들이 가끔 회자되곤 하나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문가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조기극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난망해 보인다. 결국 지금처럼 방역과 검역역량을 활용한 억제전략과, 확진자에 대해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를 통한 완화전략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바이러스와 공존해 일상이 이뤄지는 사회를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의 대책을 수립할 뿐 아니라, 장기화 전망 속에서 또다시 도래할 미래의 위기에 대한 대응력도 함께 갖춰 나가야 한다. 사스·신종플루·메르스·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이 4~5년의 주기를 걸쳐 창궐하고 있다. 대응체계의 정비, 즉 오늘날의 투자는 미래의 손실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대응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감염병에 대한 방역체계부터 정비가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이미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자고 논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에도 이에 조응하는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해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보다 강화하는 한편, 역학조사 등 섬세한 방역대책은 질병관리청 관리하에 ‘지방 질병관리본부’를 신설해 이들의 몫으로 둘 필요가 있다. 현행 보건소의 일부 기능과 국립보건연구원, 그리고 역학조사팀을 ‘지방 질병관리본부’로 통합 관리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결핵관리 등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질병관리도 이뤄질 수 있고, 유사시에는 최일선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역별 역학조사 인력과 재원도 확보해야 한다. 매번 추경예산으로 때울 것이 아니라 감염병 대응을 위한 재난관리기금 조성과 운영을 통해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염병 치료체계 정비도 시급하다. 적어도 메르스 사태 이후 5년째 손 놓고 있었던 감염병 전문병원을 이번에는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이벤트였던 대구·경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최소 1천여명의 중증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감염병 전문병상이 필요하다. 적어도 5개 권역(수도권·영남권·호남권·충청권·강원권)에 최소 200병상 규모의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해야 한다.

진료권당 1개 이상의 책임의료기관 지정도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 우선하도록 해야 하며 이들 공공병원이 지역사회의 필수의료를 책임질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진료권당 적절한 공공의료기관이 없는 경우에는 공공병원 신축이 필요하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부산 침례병원 공공화, 대전시립병원 설립 등 이미 지역사회마다 공공의료 강화의 요구는 높다.

민간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동원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 국가 위기 때마다 민간에 손 벌리듯 일을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중증환자 치료를 위해 적어도 상급종합병원의 10%는 감염병 치료체계에서 동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 유사시 마스크·방호복 등 전략물자가 안정적 확보되고 공급될 수 있도록 보급체계도 정비하는 한편, 의료기관 손실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이는 국가와 의료기관 사이 신뢰의 문제이다.

지금의 위기는 수차례 경고됐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감염병 확산이 의료영역을 벗어나 사회·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의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며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혜안(慧眼)이 필요한 시대! 뉴 노멀(New-normal)을 준비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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